9. 아, 강아지 없는 강아지 호수는 반칙이지!

채헌
채헌 · 짓는 사람
2024/04/12
 이 얘기를 하고 싶어서였다, 습작 목록을 지리하게 늘어놓은 것은. 

지금 이 문장을 몇 번 다시 썼는지 모른다. 한글은 지리하게, 를 지루하게, 로 고치는 일 따위 그만둘 수 없을까. 문서 프로그램의 대표면 대표답게 문학적 허용 이런 거 좀. 안 그래도 맞춤법 검사하면 말도 안 되는 대체어와 틀린 띄어쓰기 자꾸 추천해줘서 열받는데 말이죠.

여튼 내가 이런 과정을 거쳐 이런 글을 쓰고 있고, 퀴어 여성 연작 소설의 가장 힘들 것으로 예상한 단편의 초고를 털었는데, 이걸 하고 나니 너무너무 지쳐서 충전이 필요했다는 말이다. 보통 충전으로 될 일이 아니었다. 특급 충전이어야 했다. 밝은 기운, 여름날 태양처럼 쨍하고 맑은! 한 점의 어둠도 있어선 안 돼. 난 지금 더할 수 없이 어둡고 축축하니까. 

강아지 호수에 가기로 했다. 
밀크릭 캐니언Mill Creek Canyon의 도그 레이크Dog Lake가 이번 목적지.     
 
솔뫼는 강아지 베프 티읕님과 여길 갔었다고 했다. 티읕님은 몸집은 산만한데 3세가 채 되지 않은 데다 해맑은 성격으로 요약하면 천둥벌거숭이 같은 친구라고 했다. 솔뫼를 아주 좋아해서 솔뫼만 보면 겅중겅중 뛰어 달려드는데 자기 몸집이 그렇게 큰 줄 모르고 힘 조절도 못해서 솔뫼가 엉덩방아를 찧기도 했다고.  

나뭇가지를 던져주면 강아지들이 막 물에 뛰어들어서 그걸 물고 와. 티읕도 엄청 신나했어. 다들 얼마나 귀여웠다고. 

솔뫼는 티읕님과 함께 갔을 때 찍은 영상을 보여주며 티읕이 순둥이라 아빠가 던져준 나뭇가지를 기껏 건져와서는 다른 강아지 친구한테 그냥 내줬다고, 그게 얼마나 짠하고 귀여웠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가는 동안에도 그곳에 얼마나 많은 강아지들이 있었고 그들이 얼마나 재미나게 놀았는지 설명해 주었다. 저기, 당신이 제일 신나신 것 같은데요. 나는 솔뫼가 인간의 형체를 한 강아지라는 걸 알고 있다.      

나는 개와 고양이 들을 무서워한다. 워낙 겁보쫄보인 탓인지 개나 고양이한테 물리거나 호되게 당한 적이 있는 것도 아닌데 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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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습작기를 보내고 2023년 첫 장편소설 『해녀들: seasters』를 냈습니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오래 응시하고 그에 관해 느리게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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