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01
크리그스필(Kriegsspiel)은 독일어로 '전쟁(Krieg)'과 '놀이(Spiel)'의 결합으로, 직역하면 그대로 워게임을 의미한다. 이미 언급한 헬비히의 게임을 포함하여, 게오르크 벤투리니의 『장교와 사관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워게임(Neues Kriegsspiel zum Gebrauch für Offiziere und Militärschulen)』(1804), 요한 페르디난트 오피츠의 『오피츠의 워게임(Das Opiz'sche Kriegsspiel)』(1806) 등 크리그스필을 자칭하는 작품들이 있었다.
그러나 단어 “크리그스필”은 다음에 소개할 작품을 지칭하는 대명사로 사용된다. 바로 19세기 프로이센의 폰 라이스비츠 부자(父子)가 발명한 『크리그스필』이다. 게오르그 레오폴트 폰 라이스비츠(Baron von Reisswitz)는 1811년 무렵, 실제 전쟁 상황과 유사하지만 1:2,373 축척으로 축소된 모래상자 모형 위에서 전술적 기동을 구현할 수 있는 게임을 고안해냈다. 게임을 개발한 직후 베를린 주둔지에서 교관으로 근무하던 폰 라이체(von Reiche)와 우연히 만나게 되는데, 폰 라이체는 나중에 각각 프로이센 국왕과 독일 제국 황제가 될 프리드리히 왕자(Friedrich Wilhelm IV)와 빌헬름 왕자(Wilhelm I)를 지도하고 있었다. 이 연결고리 덕분에 아버지 폰 라이스비츠는 프로이센 국왕 프리드리히 빌헬름 3세(1770-1840) 앞에서 게임을 시연할 기회를 가졌다. 직접 시연을 목격한 국왕은 이 게임이 전쟁을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흥미롭게 만드는 새로운 방식임을 알고 매료되었다고 전해진다. (Vego, pp.109)
하지만 폰 라이스비츠의 게임이 무게감 있게 대두되기 시작한 시기는 아들 폰 라이스비츠 대에 이르러야 한다. 하인리히 폰 라이스비츠 (Georg Heinrich Baron von Reisswitz)는...
하지만 폰 라이스비츠의 게임이 무게감 있게 대두되기 시작한 시기는 아들 폰 라이스비츠 대에 이르러야 한다. 하인리히 폰 라이스비츠 (Georg Heinrich Baron von Reisswitz)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