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 병을 버리러 리버티 파크로

채헌
채헌 · 짓는 사람
2024/04/18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해 솔뫼의 집에 와 보니 싱크대 위에 맥주병들이 늘어서 있었다.
 
아니, 웬 술병들이야!

놀랄 수밖에. 나도 그렇고 솔뫼도 그렇고 술을 못 마신다. 둘 다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개지고 머리가 아프고 탈이 나는 체질이라 술은 입에도 안 댄다. 그간 알아온 솔뫼는 그랬다. 그랬던 솔뫼가 미국에서 지내는 동안 술을 즐기게 되었단다. 정확히 말하면 논알콜 맥주. 알콜 함유량이 1%도 안 되는, 보통 음료에도 그 정도는 들어있을 수 있다는 미미한 수치지만, 그래서 술 마시는 사람들은 술로도 안 쳐준다지만 그래도 맥주는 맥주, 알콜은 알콜.  

그 맛도 없는 거를 왜 마시는 거야, 세상에 맛있는 게 쌔고 쌨는데!

라고 하면 인제 전국의 술꾼들에게 사회적 지탄을 받고 에버노트에 자필 사과문을 올려 대국민 사과를 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은 술에 대한 나의 솔찍헌 감상은 이러하다.
건강에 안 좋고 어쩌고를 떠나, 맛이 없다. 맥주는 비리고 소주는 쓰고 막걸리는 쿰쿰하다.

신선한, 깔끔한, 시원한, 가벼운, 우렁이쌀 햅쌀 빨간쌀 알밤 땅콩 고구마 단호박 옥수수 꿀 감귤 한라봉 딸기 블루베리 오미자…… 내가 좋아하는 단어를 아무리 갖다 붙여도 소용없다. 술이 되는 순간 관심도 0, 흥미가 사라진다. 아주 가끔 바에 가서, 아주 아주 가끔 레몬차나 허브차 말고 다른 걸 시켜보고 싶을 때 무알콜에 큰 따옴표 몇 번 쳐서 피나콜라다 겨우 주문하는, 무지한 자의 졸견이지만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무지한 자도 의사 표현의 자유가 있어 열변을 토했고…….

내 열변의 끝에 솔뫼는 먹다 보면 나름의 맛이 있어, 라고 여유 있게 대꾸했다. 아니, 솔뫼 당신 그새 어른이 되었습니까?
솔뫼의 소중한 무알콜 맥주들 :)
한국에선 법적 기준으로 만 19세 이상, 미국에선 주마다 법이 다르지만 대개 만 18세 이상이면 성인으로 분류된다. 나는 운전을 하고 요리를 잘하며 술을 마시면 어른이라고 본다. 누군가는 어른 되기 참 쉽네, 라고 하겠지만 나는 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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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년간의 습작기를 보내고 2023년 첫 장편소설 『해녀들: seasters』를 냈습니다. 작고 반짝이는 것을 오래 응시하고 그에 관해 느리게 쓰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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