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경호 선생(이하 존칭생략)의 반론을 읽고 다소 실망스러웠다는 얘기부터 하지 않을 수 없다. 노경호는 자신의 논변을 정당화하기 위해 플라톤을 회의주의적 전통과 결합시켜 이해하고 있다. 아니, 더 나아가서 플라톤이 마치 모든 의견과 결정을 유보해야 하는 '판단중지(에포케, epoché, epokhế, εποχη)'를 주장한 사람인양 둔갑시키고 있다. 과연 그러한가? 철학사적 맥락으로 보았을 때 '회의주의'라는 조류가 플라톤의 아카데미아로부터 파생되었던 것은 사실이다. 또한 소크라테스, 소피스트,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 등의 고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서 회의적 논변이 발견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들의 학술적 목표는 보편적이고 체계적인 이론을 통해 지식 일반의 가능성을 확립하는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플라톤을 회의주의자처럼 다루는 시도는 철학사에 대한 노경호의 이해를 재고하도록 한다. 오히려 회의주의자들이야말로 그러한 지식 일반의 가능성을 부정하는 체계적인 논변을 펼친 이들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