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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4

오은 시인님의 팬입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그저 재미있어 읽고,
가슴이 시원해서 쓰고,
사고가 명료해지는 과정을 즐깁니다.

가끔 에세이를 쓰고, 
시를 끄적이는 데요.
왠지 에세이는 방백같고, 
시는 독백같다는 느낌이 듭니다.

혹시 시인님은 독자를 염두해두고 시를 쓰시는지 
아니면 물 넘치듯 흘러넘치는 감정을 쓰시는지 궁금합니다.

정답이 있겠냐마는 
그래도 앞으로 제가 꾸준히 무언가를 쓸 때 
시인님의 현답이 든든한 길잡이가 될 수 있을 듯합니다.

건강만 하세요,시인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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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4

불현듯님 안녕하세요. 책읽아웃에서도 옹기종기에서도 특히 인터뷰를 즐겨 듣습니다. 오랫동안 팟캐스트를 진행하셔서 한두명을 꼽긴 어려우실 것 같지만 작년 기준 가장 인상깊었던 게스트가 궁금합니다. 말수가 적은 게스트가 출연하면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오은 인증된 계정 ·
2024/01/24

@popo '수렴'과 '발산'에 대해 생각합니다. 수렴은 여럿으로 나뉘어 있는 것을 한데 모으는 일이고, 발산은 드러내고 퍼져 나가게 하는 일입니다. 산문이나 칼럼을 쓸 때는 수렴을, 시를 쓸 때는 발산을 생각합니다.
언뜻 닮은 것이 없어 보이는 것들이 고유한 시선을 거쳐 정렬될 때, 그것을 줄글로 풀어내고 싶은 욕망이 생깁니다. 반대로 길을 가다 마주한 어떤 장면, 아무리 밀어내도 해소되지 않는 감정, 단어가 주는 생경함 등 일상에서 마주할 수 있는 뾰족한 지점에서 시는 출발합니다. 한데 모으면서, 퍼져 나가게 하면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해지기도, 모호해지기도 합니다. 분명함은 분명함대로, 모호함은 모호함대로 가치가 있습니다.
분명함은 내가 지금 어떤 것에 집중하고 있는지, 내가 중시하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 일러줍니다. 모호함은 여전히 생각할 여지가 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잡힐 듯 말 듯 텍스트에 '겹'을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같은 장면을 보면서도 서로 주목하는 바와 느끼는 바가 다르듯, 모호함은 열린 개념입니다. 그것이 저를 다시 쓰게 만듭니다. 완벽한 답을 찾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나은 질문을 던지기 위해, 저는 씁니다. 고맙습니다.

오은 인증된 계정 ·
2024/01/24

@gogo119 대학 입학 소식을 들은 다음 날, 등단 소식을 들었습니다. 사회과학대학에 진학한 것과 시인으로 데뷔한 것이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 셈이지요. 2학년에 올라갈 때 사회학으로 전공을 선택한 것은, 시든 사회학이든 현상의 이면을 깊이 들여다본다는 점 때문이었어요. 보이는 게 다가 아니라는 사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으로는 울고 있는 사람, 잘 돌아가는 듯 보이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속은 곪아들고 있는 사회…… 제 주변에 즐비한 모순과 역설이 저를 들여다보는 사람, 쓰는 사람으로 만들어준 듯도 싶습니다.
첫 직장을 4년 가까이 다녔습니다. 빅 데이터 회사였어요. 아직도 상사와 동료 들을 가끔 만날 만큼 즐겁게 일했습니다. 매달 월급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은 직장인 시절의 가장 큰 기쁨이었지요. 고마운 이들에게 맛있는 밥도 사고 기념일에 흔쾌히 선물을 건넬 수 있는 여유가 생겼으니까요. 마음 쓰는 일을 많이 배운 것도 그때입니다. 늦게까지 함께 일하던 순간, 일이 안 풀릴 때면 거침없이 의견을 주고받던 순간, 퇴근 후 기쁜 마음으로 맥주잔을 부딪는 순간…… 하나하나가 지금의 저를 만들었을 겁니다. 
세 번째 시집 『유에서 유』를 직장 다니면서 썼어요. 직장인 오은에서 시인 오은으로 돌아오는 일이 쉽지 않아 허우적대며 썼습니다. 시집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은 날, 인생의 한 국면이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일이 불만족스럽지도, 다음 번 일자리가 정해지지도 않았지만 사표를 썼습니다. 홀가분한 상태에서 '다음'을 생각하고 싶었습니다. 이전에는 프리랜서의 삶을 단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는데, 어느새 이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고 있네요. 앞날이 불확실하지만, 이 불확실함 속에서 오히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해지기도 합니다. 프리랜서의 삶이 제게 가르쳐준 것이기도 합니다. 고맙습니다.

오은 인증된 계정 ·
2024/01/24

@muruybi 책읽아웃 청취자를 만나니 반갑습니다. 오랫동안 들어주셔서 고맙습니다. 저는 말하는 게 익숙한 사람이었어요. (지금도 말이 많은 것은 마찬가지지만) '대화'는 이야기를 주고받는 행위를 가리키잖아요. 주기만 하거나 받기만 하는 것은 대화가 아닌 셈이죠. 책읽아웃을 진행하며 가장 크게 바뀐 지점도 제가 '듣는 사람'이 되었다는 겁니다. 얼마 전에 출간된 박연준 시인의 산문집 제목도 『듣는 사람』인데요, 책을 읽는 일도 이야기를 청하는 일도 다 기본적으로 듣는 일에서 출발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답니다.
듣기에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겁니다. 흘려들을 수도, 가려들을 수도 있습니다. 번갈아듣는 사람이 있는 반면, 귀담아듣는 사람 또한 존재하지요. 좋은 대화는 귀담아듣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귀담아들을 때 말의 표면을 비집고 들어가서 의중을 헤아리는 일, 그냥 듣는 것이 아니라 깊이 새겨듣는 일이 가능해지지요. 책읽아웃을 진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도, 후회되는 순간도 바로 듣기에서 비롯합니다. 온몸으로 듣는 순간, 저는 현장에서 그 말을 체득하는 느낌을 받아요. 리듬을 놓치고 흘려듣는 순간, 저는 맥락을 놓친 죄책감에 시달리기도 합니다. 말하기처럼, 듣기 또한 아무리 연습해도 완벽해지기가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대화의 시작에 '듣기'가 있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잘 듣는 일은 살피는 일입니다.
올해 4월 말쯤 '시의적절' 시리즈 중 한 권이 출간될 예정입니다. 1월에 김민정 시인이 『읽을, 거리』로 근사하게 첫발을 뗀 시리즈입니다. 제가 기념일이 많은 5월을 맡았답니다. 마음 전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오은 인증된 계정 ·
2024/01/24

@K 동의합니다. '빨리빨리'라는 말이 '바로바로'가 된 게 지금 이 시대 같아요. '분초사회'라는 말이 생길 정도로요. 10분 이상 집중하기 어려워하고 편집되고 요약된 정보가 가치 있다고 평가되기도 하고요. 이는 비단 아이들뿐 아니라 성인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싶습니다.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로 사람들은 일을 하다가도 빈번하게 스마트폰 화면을 들여다보잖아요. 릴스 등의 쇼츠를 보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지나 있기도 하고요. 
저는 빠른 것이 득세하는 바로 이 지점에서, 시의 가치를 생각합니다. 한 발 한 발 걸어가듯 행과 연을 지나치는 일, 행간의 빈 장면에 상상력으로 사연을 채워넣는 일, 때때로 시의 마지막 장면을 이어 써보는 일…… 이처럼 시를 읽는 일은 자발적으로 느려지는 일입니다. 적극적으로 한발 뒤처지는 일입니다. 한발 뒤에 있기에 볼 수 있는 장면이 분명 있을 겁니다. 거기에는 '사색'이 들어찰 것이고요. 
깊이 생각하고 이치를 따질 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천천히 해야만 비로소 나타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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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3

문화산업지원이 너무 한쪽에만 치중된 것 같습니다. 순문학을 쓰는 작가들을 위한 제도가 점점 줄고 있지 않나 걱정됩니다. 작가님은 이제 중견이신데요. 작가들에게는 어떤 지원이 가장 필요한가요? 마포구 도서관 일도 그렇고 지원이 매년 깎이는 것 같아서 속상합니다.

https://alook.so/posts/6MtOd8J

웃는식 ·
2024/01/23

반갑습니다^^요즘 근황을 잘 몰라 궁금하구요. 예전에 들었던 것 같은데 (제 기억이 맞다면) 휴일은 글 쓰는 것을 쉬신다고 하셨는데 그 루틴이 계속 지켜지고 계신지......궁금합니다.

또 한 가지 질문 더 ! 사람을 한 분, 한 분 대할때 느껴지는 오은 시인만의 온기랄까요?  그런 감성이 오은 시인께서는 무척 풍부하신 것 같아요. 어렵겠지만 낯선 이들에게 다가서거나 대하는 마음가짐, 노하우가 있으시다면 알려주셔요~^^

추운날 강연 가실 때 따숩게 다니시길 바랍니다. 감기 조심하시구~^^

Q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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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3

시인이라는 정체성을 품고 살아가지만 칭징저님의 이야기처럼 팟캐스트 진행자, 강연가로 살아가는 시간이 많으신 것 같아요. 비슷한 질문인데요. 작가 활동을 하며 가장 곤혹스러운 일은 무엇인지가 궁금합니다. 

칭징저 ·
2024/01/23

오은 시인은 시보다 먼저 얼굴을 알게 된 분입니다. 몇 년 전 어떤 자리에 가보니 시인이라고 소개된 분이 너무 재밌게, 또 다정하게 말씀을 잘 하시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사회활동가, 그리고 흠모하는 예술가들과 격의 없이 이야기 나누시는 시인의 모습을 보고 시집도 찾아보게 됐습니다. 공교롭게 제가 믿고 신뢰하는 단체나 모임에서 주최하는 행사에 오은 시인이 자추 초청되더군요. 그래서 더 좋은 마음과 믿음이 생겼습니다. 
그런데요, 우리나라에서는 본업 외에 다른 활동을 많이 하는 아티스트를 다짜고짜 폄하하거나 격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더구나 정치적인 색이 가미된 활동을 조금이라도 하게 되면 더 그런 편이지요. 이런 말씀을 듣지 않기 어려울 정도로 오은 시인께서는 미디어에 노출이 많이 되는 편인데요. 이럴 때 어떤 생각이 드실까요? 사람들의 마뜩찮은 시선과 불신을 어떻게 상대하고 또 이겨내는지 궁금합니다. 오은 시인님을 응원하고 지지합니다. 

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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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3

시/산문/칼럼을 쓸 때 마음가짐이나 작법이 달라지는지 궁금합니다. 
글 쓰는 태도가 달리지시나요?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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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사회학을 전공하셨는데 시인이 되셨어요. 직장도 다니신 것으로 아는데요. 프리랜서 작가의 길로 가게 된 계기가 있나요? 가끔 직장인 시절이 그립기도 한가요?

김윤정 ·
2024/01/22

안녕하세요. 오은 시인님. 반갑습니다. 정말 여러 가지 다양한 일을 바쁘게 하고 계시네요. 대단하세요. 건강을 잘 챙기시면서 일하시는 거겠죠? 요새는 거절을 잘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책읽아웃을 오랫동안 진행하시면서 가장 기억나는 일이나 후회하는 일이 있으신가요? 책읽아웃을 진행하면서 가장 크게 바뀐 게 있을까요? 궁금합니다. 더불어 2024년 출간 예정된 책이 있으면 알려주세요. 오은 시인님! 늘 응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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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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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1/22

안녕하세요, 시인님. 이전에 청소년 시집도 내셨었고, 지방의 아이들에게 시를 가르쳐주는 게 꿈이라고 하셨던 인터뷰를 읽었습니다. 요즘 아이들은 글보다는 영상에 익숙하고, 느린 것보다는 빠른 것에 익숙한 것 같습니다. 그런 아이들에게 시가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오은 인증된 계정 ·
2024/01/22

3. ‘이따금 쓰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시를 쓰고 시집을 만드는 작업 루틴이 궁금합니다. 

눈앞에 닥친 마감이야말로 ‘이따금 쓰는’ 일에 전면적으로 돌입하게 만들겠지요? (웃음) 그러나 백지는 기약이 없습니다.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지만, 시는 혼자 쓰는 것이잖아요. 이전 질문에 제가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탑재된 캘린더를 이용한다고 말씀드렸잖아요. 마찬가지로 기본으로 제공되는 메모장도 십분 활용합니다. 매일매일 뭔가를 적어요. 읽고 있는 책의 구절부터 문득 낯설게 다가온 단어, 인상 깊게 본 신문 기사 등 메모장에는 다양한 것들이 담겨 있어요. 그것들을 들여다보고 있노라면 쓰고 싶어집니다. 말하고 싶어집니다. 세상에 이런 것이 있다고, 별세계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여기에 있다고! 

얼마 전, 포항에 있는 학교 두 군데에 강연하러 갔어요. 강연 사이에 시간이 좀 떠서 무엇을 할지 고민하다가 인근에 있는 시장에 갔어요. 시장에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거기에 모인 이들이 주고받는 말이 있고 그들이 사고파는 물건이 있으니까요. 시장 안에는 손수레에 비누를 한가득 쌓아두고 파는 할아버지가 계셨어요. 종이 상자를 오려 만든 다섯 장의 팻말이 걸려 있었어요. 일, 제, 때, 비, 누, 이 다섯 글자였지요. 비누를 살 목적으로 시장에 방문한 사람이 아닌 이상, 손수레를 심상하게 지나쳤을 거예요. 근데 이상하게 저는 발이 떨어지지 않는 거예요. 머릿속에 앞다투어 질문들이 우거지기 시작했거든요. 일제때비누? ‘일제 때’의 비누일까? 일제의 ‘때 비누’일까? 아니야, 일을 ‘제때’ 하는 비누일지도 몰라⋯⋯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메모장에 일, 제, 때, 비, 누 다섯 글자를 적어두었지요. 얼마 후 그 다섯 글자를 바탕으로 「제일때비누」라는 시를 썼습니다. 그사이, 머릿속에서 ‘일제때비누’가 ‘제일때비누’로 변신한 거지요. 이처럼 익숙한 광경에서 낯선 것이 튀어나오는 순간, 시의 발화(發火/發話)가 시작됩니다. 

시집은 이런 시간이 차곡차곡 쌓여 만들어지는 것 같아요. 시를 쓰다 보면 어느 순간, 이제는 묶을 때가 되었다는 느낌이 찾아와요. 내가 지난 몇 년 동안 무엇에 집중하고 있었는지, 어떤 감정에 선선히 발목 잡혔는지 선명해지는 순간인 셈이에요. 물론 썼던 원고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부족한 것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거든요. 그러나 이는 지난 몇 년 동안 달라진 나 자신을 마주하는 기회이기도 해요. 달라진 것들 사이에서 여전한 것을 확인할 때면 저도 모르게 웃음꽃이 피어납니다. 그래, 나는 이런 사람이었지 하고요.

@alookso콘텐츠 

오은 인증된 계정 ·
2024/01/22

2. 고정 스케줄과 일회성 스케줄 그리고 일정 기간 진행하는 프로젝트성 스케줄의 비율은 대략 어느 정도 되나요? 그것들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질문을 주셔서 저 자신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되었습니다. (웃음) 작년 하반기 기준으로 1:1:1 정도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스케줄마다 진행 기간과 방식이 다르니, 제가 들이는 시간과 노력을 기준으로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3년 전부터 웬만하면 고정 스케줄을 잡지 않고 있습니다. 품이 많이 들어서라기보다는 의도적으로 쉬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했거든요. 격주로 도서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진행하고 있고 일간지에 월 1회 칼럼 연재를, 웹진에 월 1회 시 연재를, 월간지에 격월로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어요. 문예지 청탁 원고와 책의 추천사 집필 등을 고려하면 생활의 일정 부분을 읽고 쓰는 데 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고정 스케줄은 일종의 중심축 역할을 해주는 것 같아요. 새로운 제안을 받았을 때, 고정 스케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고 결정을 내리거든요.

일회성 스케줄의 대부분은 학교나 기업, 도서관 등의 기관에서 진행되는 강연이에요. 출판사나 온오프라인 서점에서 진행하는 북토크도 여기에 해당되겠네요. 보통은 고정 스케줄을 고려해서 결정하지만, 이때는 ‘마음이 동하느냐’가 또 하나의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합니다. 보수는 적지만 취지가 좋다거나, 하루를 통째로 써야 하는 일정이지만 제안 메일에서 곡진한 마음이 느껴진다거나, 빡빡한 스케줄이라 수행하는 데 부담이 있지만 이 사람과는 꼭 한번 북토크를 해보고 싶다거나 하는 ‘사심’이 최종 결정에 영향을 미치지요.

프로젝트성 스케줄은 최근 몇 년 동안 의도치 않게 많이 소화하게 되었어요. 경기도 시 축제 예술감독을 하기도 하고 3D 애니메이션 제작 스튜디오와 시나리오 작업을 하기도 했습니다. ‘여정(旅程/旅情)’과 관련한 김포공항에서의 작업, 독일과 일본에서의 낭독회 및 워크숍도 기억에 남는 일입니다. 일회성 스케줄보다는 시간과 노력이 많이 드는 작업이지만, 끝나고 나면 성취한 것이 눈에 보여서 바지런히 몸과 마음을 움직이게 되는 것 같아요. 새로운 것 앞에서 겁보다 호기심이 더 큰 동력으로 작용하는 편입니다.

그것들을 관리하는 노하우라⋯⋯ 계획과 정리에 형편없는 제게 너무 어려운 질문입니다. (웃음) 다만 저는 주기적으로 스케줄을 확인해요. 여러 캘린더 앱을 전전하다가 지금은 스마트폰에 기본으로 탑재된 캘린더와 책상 위 탁상 달력을 사용하고 있어요. 캘린더를 들여다본다고 스케줄이 줄어드는 것은 아니지만, 자연스럽게 머릿속으로 동선이 그려지거든요. ‘아, 이날은 여의도에서 팟캐스트 녹음을 마치고 광화문으로 가면 되겠다. 행사 시간까지 2시간 정도 여유가 있으니 그때 못다 한 메일 답신을 해야겠다.’처럼 틈틈이 자기암시를 하는 거죠. 고정 스케줄 사이사이에 일회성 스케줄과 프로젝트성 스케줄을 소화하는 것이기도 해요.

스케줄과 스케줄 사이에 나는 ‘짬’을 잘 활용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을 해요. 그때 칼럼을 쓰기도, 시의 초안을 잡을 수도 있어요. 운이 좋다면 몸담은 프로젝트의 방향성이 잡히기도 하고요. 생각이 막힐 때면 일단 걷습니다. 언제든 어디에서든 걸어요. 단순히 걷는 것이 아니라 실마리를 따라 쫓아가는 느낌으로 걷습니다. 이때 생각보다 많은 일들이 해결됩니다.

@alookso콘텐츠

오은 인증된 계정 ·
2024/01/22

1.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제안을 받으실 것 같습니다.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의뢰가 왔을 때 떠올리는 질문이 두 가지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을까?’와 ‘꼭 나여야 할까?’입니다. 의욕보다는 역량을 중심에 두는 셈입니다. 물론 일정, 경제적 보상, 일에서 얻을 수 있는 비물질적 요소도 고려하지 않을 수 없지요. 저는 뚜벅이이기 때문에 약속 장소에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인문학에 대한 강연 한번 해보시면 어떨까요?”로 시작하는 제안보다 “문해력이 화두입니다. 문해력을 신장하는 데 있어 책 읽기나 시 쓰기가 도움이 되나요? 문해력을 키우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인 제안에 끌립니다. 전자의 제안을 받을 때면 ‘무엇을 하지?’와 ‘어떻게 하지?’에서 출발해 ‘이걸 꼭 해야 할까?’에 이르기까지 고민이 깊어지거든요. 물론 그 고민 과정에서 기존에 하지 않았던 생각이 발견되기도 하지만요. 후자의 제안은 분명하고 뾰족합니다. 제가 해야 할 일을 명확히 제시하지요. 동시에 어떤 틀에 갇히기 때문에 정해진 경로 말고 다른 방식으로 사고하기 힘들어지기도 해요. 

정리하자면 이렇습니다. 일단 그 일을 제가 할 수 있으면 하는 편입니다. 꼭 저여야만 한다면 흔쾌한 마음과 책임감이 배가되겠지요. 추상적인 요구여도 새로운 발견이 가능하다면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편입니다. 어쩌면 이는 ‘내가 할 수도 있는 일’을 ‘내가 꼭 해야 하는 일’로 바꾸는 과정 같기도 합니다. 이 과정에는 분명 보이지 않는 화학작용이 있을 거예요. 

작년 가을, 리움미술관에서 설치미술가 김범 님에 대한 강연을 한 적이 있어요. 작가와 작품을 익히 알고는 있었지만, 분야가 달라서 고민했지요. 그런데 거기에 답이 있더라고요. 분야가 다르니 제게 강연을 제안했겠구나 한 거죠. 미술관 측에서도 작품에 접근하는 새로운 눈이 필요했던 거예요. 최고의 눈이 아니라 새로운 눈이요. 그게 열쇠가 되어주었고 강연도 무사히 마칠 수 있었습니다.

@alookso콘텐츠

alookso콘텐츠 인증된 계정 ·
2024/01/22

<얼룩소가 먼저 물어봤습니다>

1. 여러 곳에서 다양한 제안을 받으실 것 같습니다. 일을 선택하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2. 고정 스케줄과 일회성 스케줄 그리고 일정 기간 진행하는 프로젝트성 스케줄의 비율은 대략 어느 정도 되나요? 그것들을 관리하는 노하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

3. ‘이따금 쓰는’ 순간은 언제인가요? 시를 쓰고 시집을 만드는 작업 루틴이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