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건, 아들과 손자를 패다 - 때려서 가르치기
2024/01/14
1. 이문건, 아들을 패서 가르치다
이문건은 조광조의 제자로 출사하여 승정원 좌부승지까지 지냈으나 사화에 연루되어 낙향한 인물이다.
이문건은 조광조의 제자로 출사하여 승정원 좌부승지까지 지냈으나 사화에 연루되어 낙향한 인물이다.
그가 남긴 <묵재일기>는 진솔한 내면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조선시대 이해에 큰 도움을 준다.
그에게는 아들 기성(원명은 온) 하나가 있었다. 이 아들은 어려서 열병에 걸려서 총명함을 잃었고 후일 풍도 맞아서 다소 바보스러웠던 모양이다.
이문건은 이런 아들이 못마땅해 죽을 지경이었다.
아들이 18세가 되었을 때, 이문건은 시묘살이 중이었다. 아들을 데려와 같이 살면서 공부를 가르쳤다. 아들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시경>을 이해하지 못하는 걸 보고 열 받아서 긴 판자때기가 부러질 때까지 아들을 두드려팼다.
이 와중에 조카가 기성의 눈이 퀭한 것이 밤에 자위를 하는 것이 분명하다고 일러바쳤다. 이문건이 대로해서 불러다 따져보니 기성은 부정하질 못했다.
이문건은 기성이 밤에 또 자위를 하자 그 이불을 들추고 정액을 핥아먹게 했다. 이렇게 모욕을 주면 고칠 것이라 믿은 것이다. 이문건은 "수캐와 같은 정욕을 어찌 능히 고치리오. 나의 노력이 부질 없다"라고 쓰고 있다.
이문건은 아들의 자위 행위로 극대로했기 때문에 옷을 벗기고 마구 때렸고 얼굴과 손에서 피가 흐르기까지 했다. 자위현장을 잡아서 "뭐가 되려고 이러냐"며 마구 팼는데, 정신을 차려 보니 머리카락이 절반이나 뽑혀 있었다. 그러고도 등짝을 수십 대나 때리니, 아들은 "다시는 안 그럴게요"라고 빌었다.
기성은 아버지를 그렇게 안심시킨 뒤에 가출했다. 가출이라고 해봐야 시묘를 빠져나와 서울에 있는 집으로 도망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