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러간다는 것은 서글픈 일이다

악담
악담 · 악담은 덕담이다.
2023/11/08


국어 시간에 교과서 대신 문학책을 낭독했던 프랑스 국어 교사 다니엘 페나크의 에세이 << 소설처럼 >> 을 읽다가 문득 옛 생각이 났다.  학생들에게 높임말을 사용하셨던 국어 선생님은 열린 교육을 지향하셨던 분이셨다. 당시 쥐새끼처럼 간사했던 학생들은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선생님의 정치적 취향을 간파하고는 수업 시간을 엉망으로 만들곤 했다.  국어 수업 시간은 몇몇 까불이의 장기 자랑 무대가 되어서 언제나 어수선했다. 나도 쥐새끼처럼 간사한 놈이어서 국어 시간을 엉망으로 만드는 데 갖은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그때는 읽기 수업이 진행되고 있었다. 선생님은 책에 수록된 소설을 낭독하셨다. 황순원의 < 소나기 > 였다.  처음에는 까불이 몇몇이 까불이 ~ 까불이 ~  까불이 해서 어수선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분위기는 점점 차분해졌다. 선생님의 낭독이 끝났을 때...... 교실은 쥐 죽은 듯 고요했다. 아이들은 수수밭 수숫단 속에 몸을 웅크렸던 소녀와 그 죽음 앞에서 진심으로 슬퍼했다. 까불이 몇몇도 코끝이 찡했는지 콧등을 찡그리고는 풀이 죽은 모습이었다. 또 몇몇은 수업이 끝난 뒤에도 쉬는 시간에 이 소설을 다시 읽었다.  돌이켜보면, 그것이 문학의 힘이었다. 


한 작품을 긴 호흡으로 오롯이 읽는 교수법이야말로 가장 뛰어난 문학 수업이었던 것이다. 아이들은 부연 설명 없이도 그 소설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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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1호 하드보일드 센티멘털리티 악담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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