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내 마음을 내가 믿어요 - 4. 큰이모가 간장 장사해서 돈을 겁~나게 벌었대여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08/01
우리엄마는 1.4후퇴 때 피난 나오면서 엄마의 젤~큰언니(강은순의 큰 이모)가 델꼬 왔대여. 큰형부가 평양중학교 지리 선생이었대. 그래서 이 길을 잘 안대. 이 지리를. 큰 이모는 평양에서 약국을 물려받아서 하구 있었다는데, 친정이 부자였겠지.  울엄만 평양에 있는 중학교, 국민(초등)학교 이런데다 회약(회충약)배달해주고 그랬대여. 


어머니(강은순의 외할머니)는 일찍 돌아가시구 해서, 아버지 혼자 집을 지킨다구, 니네들 그러믄 형부 따라서 가라, 그래가지구 큰언니랑 형부 그리고 우리엄마, 그러니까 젤 큰언니 밑에 여동생 넷이 내려온 거야. 엄마가 밑에서 두 번째구, 딸들이 많았대. 나한테는 이모들이지. 그렇게 내려와서는 이제... 3.8선이 그어지는 바람에, 이렇게 영영 이별이 된 거지.


우리엄마 큰형부가 그렇게 지리를 잘 알아서 1.4후퇴 때 걸어서 온 거야. 그때 해주로 간 사람은 다 죽었다대. 거긴 뻘이라, 바닷가 근처 벌판에 숨을 데가 없어서 산으로, 산으로 해서 왔댜~. 거기를 마지막으로 새벽 두시에 넘어 오는데 애기 울음소리가 나면 그냥 총살이래. 낫가리 해놓은데 거길 총으로 땅땅땅땅... 다 죽었대!
   
   
빈 집에서 자다 아궁이에 불 땠다가 폭탄 터지고... 그 수류탄으루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대. 그렇게 넘어오는데 태극기가 보이드래. 이젠 살았다~. 거기서부터 철길로 막 왔대. 그래가지구 여기 피난 나온 겨. 한 달 보름을 걸어 왔댜. 평양에서 걸어서 서울까지, 또 거기서 대전까지 왔다가 저기 대구 칠곡까지 내려 갔다대? 내려갔다가 후퇴하는 바람에 이제 다시 올라와서 대전에 터를 잡았던 거겠지.
   
   
친척이 우리도 별루 없어여. 이모가 한 분 살아계셔. 태평동 거기 태평고을아파트 사는데 걸음도 잘 못 걸어. 외출도 못해. 우리아버진 돌아가셨구, 엄마는 88세(2019년 현재)야. 내 바로 밑에 남동생이 인천 송도에 살아. 엄만 걔가 모시고 살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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