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과 소년의, 소유 없는 공유지

연하일휘
연하일휘 · 하루하루 기록하기
2023/04/16
불을 켜지 않아 조금은 어두운 방 안, 커피 몇 모금을 입안으로 넘기다 노트북 옆에 내려 놓았다. 집중이 되지 않아, 몇 권의 책을 뒤적이다 한 두 글자를 이어나가다 이내 덮어버리고 말았다. 일요일의 한 낮, 창 너머로 전해진 햇빛은 따뜻하건만, 집안 공기는 차게 식어 있다. 고른 숨소리를 내쉬며 옆에서 잠든 강아지를 바라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조금 걷고 싶어졌다.

아침과는 달리 나쁨을 가리키는 미세먼지 수치에 마스크를 끼고 집을 나선다. 옆 건물의 길게 늘어진 그림자에 마당의 공기도 제법 차갑다. 겉옷 하나가 고민되지만, 햇빛 아래를 걸을 예정이기에 모자를 푹 눌러쓰고 이어폰을 귀에 꽂았다. 가고 싶은 곳이 없는데. 이럴 때면 만만한 게 공원이지. 어제 산책을 하다 부서진 보도블럭을 밟으며 발을 살짝 삐끗하고 말았다. 발목이 아닌, 발 한 가운데에서 근육통처럼 느껴지는 통증에 조심스러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평소 걷던 길이 아닌, 보도블럭이 없는 골목을 산책길로 삼았다.

모두 나들이를 나간 것일까, 골목에 사람들이 거의 보이지 않는다. 작은 아버지께서는 '죽은 동네'라는 표현을 사용하셨었다. 2-30년간 이사를 오고 가는 사람들도 거의 없는, 나이 든 사람들이 모여 살며 아이들이 거의 없는 동네. 그럼에도 종종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노는 모습이 보이곤 했는데, 오늘은 놀이터마저 고요하다. 차들마저 없었다면 더 좋았을텐데,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차들에 골목 구석으로 피하는 일에 작은 짜증이 밀려온다. 큰 길가의 보도블럭을 피하기 위해, 보다 평평한 골목을 택한 것인데 잘못된 선택이었을까.

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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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걸 좋아하지만 잘 쓰진 못해요. 사교성이 없어 혼자 있는 편이지만 누군가와의 대화도 좋아해요. 긍정적으로 웃으면서:) 하루하루 살아가고픈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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