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존된 과거 속에 새긴 사랑의 열정: <단순한 열정>(Passion Simple, 2020) 다니엘 아르비드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인증된 계정 · 다른 시각을 권하는 불편한 매거진
2023/04/12

1. 각색영화로서 아르비드의 <단순한 열정>


최근 2월에 개봉한 다니엘 아르비드(Danielle Arbid)의 <단순한 열정>(2020)은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아니 에르노(Annie Ernaux)의 동명 소설(1991)을 원작으로 한 각색영화이다. "사적인 기억의 근원과 소외, 집단적 억압을 용기와 임상적 예리함을 통해 탐구한 작가"로서 그 성과와 업적을 인정받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에르노가 쓴 원작 소설은 작가의 지극히 사적인 불륜의 단순한 열정을 과감하게 탐구한 글쓰기의 산물이다. 작가 자신은 거부하지만 오토픽션(자서전+픽션)이라는 모순어법의 모호한 장르로도 명명되는 이 소설은 허구를 배제한 자전적 글쓰기, “판단, 은유, 소설적 비유가 배제된” 객관적인 “평평한 문체”의 글쓰기로 기억과 과거를 탐구하는 반소설적 소설이다. 물론 에르노의 소설은 아방가르드를 고집하는 반소설로서의 누보로망(nouveau roman)과는 다른 방향을 추구하는 글쓰기의 산물이긴 하다.

그러나 이 소설을 각색한 영화를 비롯하여 아르비드의 대부분의 작품들은 누보로망 작가들과의 협업으로 시간과 기억이라는 주제를 일관되게 다뤘던 알랭 레네(Alain Resnais)의 영화들과의 상호연관성을 현저하게 드러내 보인다. 특히 프랑스 여자 교수와 연하의 유부남 러시아 외교관이 등장하는 이 영화는 마르그리트 뒤라스(Marguerite Duras)와 함께 만든 프랑스 여자 배우와 일본 남자 건축가의 짧은 불륜의 사랑을 다룬 레네의 <히로시마 내 사랑>( Hiroshima mon amour, 1959)을 곧바로 연상시킨다. 아르비드는 이 영화를 영화 속 영화로 사용할 정도로 레네의 영화에 대한 오마주를 확실하게 표한다.

레바논 태생 아르비드가 감독으로서 가능성을 인정받은 첫 단편 <파괴>(Demolition, 1998)는 베이루트 폐허의 집터에서 사진을 찾아 헤매는 여자에 관한 영화이다. 첫 영화부터 시작하여 대부분의 아르비드의 영화는 레네의 첫...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르몽드 디플로마티크 님이 만드는
차별화된 콘텐츠, 지금 바로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는 르몽드의 대표적인 자매지로 약칭은 "르 디플로"입니다. 국제뉴스를 다루는 월간지로 30개 언어로 51개 국제판이 발행되고 있다. 조르조 아감벤, 아니 에르노, 알랭 바디우, 슬라보예 지젝, 피에르 부르디외 등 세계적 석학들이 즐겨 기고했으며, 국내에서는 한국어판이 2008년10월부터 발행되어 우리 사회에 비판적인 지적 담론의 장으로서 각광받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는 <르몽드 디플로마티크>를 일컬어 "세계를 보는 창"이라고 불렀습니다.
212
팔로워 381
팔로잉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