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간절해서 듣고 싶지 않은 이름

수달씨
수달씨 · 글 쓰고 그림 그리고 디자인합니다
2023/08/01

내겐 일종의 부정 버튼이 있다. 좋은 책을 읽다가도, 좋은 드라마를 보더라도 어떤 장면이 나오면 나는 곧바로 뾰족한 태세가 된다. 별 것 아니다. 오래된 친구들과 술 한잔 하며 사는 얘기나 푸념을 늘어놓는 장면. 혹은 ‘이런 나를 키운 건 팔 할이 친구들이었다’라는 뉘앙스의 이야기. 이런 종류의 이야기를 접하면 나의 감정은 질투와 슬픔과 저항감과 방어기제들로 울그락불그락 다채로워진다. 말하자면 나의 부정 버튼은 ‘친구’다. 

나는 몇 년 전 친구를 잃었다. 멀어짐으로써 잃은 것인데 단순한 멀어짐이 아니었다. 그는 그의 세계에서 나를 지우겠다고 선언했고 나는 이유도 모른채 지워짐을 겪었다. 오래된 친구는 아니었지만 나이 먹어 진짜 친구를 만나기란 어렵다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서른 넘어 사귄 그가 나는 너무 각별했다. 너무 각별해서 나는 너무 자주 선을 넘었고 그는 그걸 견디지 못했던 것 같다, 라고 추정한다. 

이후 많은 시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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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고 그림 그리고 디자인 합니다. 시골집과 마당을 가꿉니다. 서점 주인이 되는 꿈이 있습니다. 독립출판 에세이집 <오늘의 밥값>, <어쩌다 마당 일기>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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