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하얼빈』을 읽고 : 문명과 야만, 성(聖)과 속(俗)의 위태로운 자리

이의연
이의연 · 교육학 공부하는 대학원생
2023/02/09

김훈 작가의 작품을 좋아한다. 처음엔 그의 문장법에 매료되었으나, 지금은 익숙함을 뒤틀어 낯섦에 부딪히게 하는 전개를 좋아한다. 특히 역사를 다룬 소설은 자 대고 그은 밑줄로 빼곡하다.

   전작 『남한산성』에서는 ‘말’을 주된 소재로 침략자 홍타이지를 만주의 야만인이 아닌 절도 있는 언어를 구사하는 청의 황제로 묘사하고, 조선 왕의 의미 없는 발화를 대비했다. 바깥으로부터 무너지는 조선의 성벽보다 안에서부터 무너지는 말의 싸움을 그려냈다. 

   또 다른 전작 『흑산』에서는 신유박해 이후 ‘믿음’을 주된 소재로, 세속에서 믿음을 지킬 수 없으니 세속 밖 흑산도에 기거하는 정약전, 세속이 천주 신앙을 박해하니 또 다른 세속 국가에 군함을 보내달라 요청하는 그의 사위 황사영, 이도 저도 없이 ‘오늘은 맞지 않게 하소서’ 비는 민초들을 대비했다.

   『하얼빈』 또한 잘 알려져 직관적으로 떠오르는 한 사건을 낯설게 그려낸다. 이토 히로부미라는 이름은 조선 침략의 주범이자 안중근의 총탄이 박힌 한 인물로만 떠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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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년생, 직장인, 대학원생, 교육학을 공부합니다.세상이 더 나아지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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