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룩소의 어느 열정페이

노영식 · 석기시대 언어학자
2023/06/14
shahbazshah91, pixabay
1920년 창간 조선일보를 창간호부터 디지털화하는 프로젝트가 있었다. 
《월간 山》, 《월간 조선》, 《여성 조선》, 《주간 조선》 등을 출판하는 조선뉴스프레스p(당시 대표이사 김창기)에서 맡았다. 1920년대 신문이니 한자 소양이 필수였다. 당시 신문은 마이크로필름으로 보존되어 있었다. 시간급이 아니고 실적급으로 돈을 줬다.  내용이 뭉개져 판독에 시간이 걸리고 진도가 안 나가 대부분 주말까지 뛰어도 평균 월 백만 원이  안 되는 열정페이였다. 십 년 뒤인 1930년 대는 한글이 많고 상태가 좋아 월 이, 삼백만 원은 무난해 희망을 걸고 있었다. 프로젝트를 지휘하는 책임자1 밑에 일정 기본급을 보장해주는 팀장2을 두 사람 둬 작업이 제대로 되었는지 감독을 했다. 처음에는 진도가 느려 팀장 일이 그런 대로 알맞았으나 점점 숙달이 되면서 작업량이 늘어났다. 감독 팀장 아래 소감독3을 셋 뒀다. 여섯 명의 소감독은 자기 작업을 하면서 팀원 일을 봐주고 무보수였다. 팀원은 작업한 것에 판독이 안 되어 공백으로 냈다가 지적 받으면 반품되고 성과급이 안 나갔다. 약은 팀원은 소감독3에게 걸릴 만한 단어는 소감독3에게 확인하고 진도를 나갔다. 나는 출판사에서 늘 하던 교정 일이라  팀원급에서 소감독급으로 승진(?)했다. 교정 실력 소문이 나자 우리 팀만 봐주는 것이 아니라 타 팀에서도 도와 달라고 몰려왔다.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나면 하루 해가 다 가고 내 일은 진도가 안 나가 성과급 수입이 뚝 떨어졌다.  병원에 두고 온 가족을 문병도 못 가게 했다. 무보수이지만 소감독직을 맡았으니 책임은 있다.  이게 바보짓이었다. 잘난  척을 하지 말았어야 했다.    
두 달쯤 지나서  책임자1가 점심 시간에 국민 체조 시간을 마련해 전원 집합 시켜 운동을 하곤 했다. 이게 시선을 돌리는 전략이었다. 하루는 조선뉴스프레스 대표가 골프를 치러 나가 자리에 없는 사이에 체조 시간에 책임자1가 프로젝트를 중지한다고 팀원들에게 일방 통고를 했다. 새로 맡을 회사q에서 프로젝트를 인수한다고 했다. 알기 쉬운 1930년대 기사 작업이 눈앞에 있었다. q 대표는 컴퓨터 판독으로 작업을 하기 때문에 사람이 필요 없다고 했다.  팀원들은 10년 일거리라고 한 신사 협정을 위반한 것이라고 들고 일어나 노동부를 찾아갔다. 조선일보사에서 이런 짓을 하느냐고 비판을 했다. 정확하게는 조선일보가 아니라 조선뉴스프레스였다. 같은 집이다. 

얼룩소에서 보상을 해준다면서 글을 쓰게 하고 있다. 얼룩소가 뭘 바라고 돈을 치르고 있는지는 모르겠다고들 한다. 빙산처럼 돈을 많이 받는 몇몇 저자를 떠받치고 있는 열정페이 필자군이다.  얼룩소 꿍꿍이 속을 내부에서는 알지도 모르지만 외부에서는 수익 모델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수입이 될 일을 포석 작전으로 하고 있다는 관점에서 봐야 할 것이다. 돈이 남아 돌아가 내 마음 대로 쓴다는 돈키호테 부자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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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년 전 구대륙 인류의 신대륙 확산 이후 단절된 언어 비교로 석기 시대의 언어를 발굴한다. 특히 남미 안데스 산중 티티카카 호반의 언어와 아시아 언어를 비교한다. 각 언어 전문가 논저와 DB를 이용해 신뢰성을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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