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고 싶은 얼굴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4/03/17
그림책 3. <고향의 봄> 이원수 글, 김동성 그림 /파랑새 /2020년


여든여덟 엄마가 노인성치매 판정을 받았다. 엄마는 치매진단 이전부터 서산 언니네 모텔(하숙집)방 한 칸에 기거했다. 건물 앞에는 왕복 4차선 도로가 있지만 뒤로는 소나무 밭과 논과 밭이 너르게 펼쳐있다. 해마다 봄이면 엄마가 그곳에서 쑥을 캤다. 엄마의 지병인 신장치료의 주기적인 검진은 남동생이 맡았다. 일 년에 두 세 번씩은 엄마를 우리 집에 모셔오곤 했다. 진단 3년째의 어느 날, 거울 앞에 앉은 엄마가 말했다. 
   
   
“에그~, 내가 봐도 참 많이 늙었다. 우리 엄만 이렇게까지 늙진 않았을 텐데.”
“엄마, 그럼 내 얼굴을 봐요. 내가 엄마보다 삼십 몇 년은 더 젊으니까.”
“너를 보라구? 얘, 내가 울 엄마랑 같이 있을 때 엄마나이가 지금 슬비(외손녀) 정도거나 더 아래일 거 아니니? 이젠 돌아가셨지 뭐. 살아있다 해도 내가 알아볼 수나 있것어?”
   
   
나는 엄마의 정확한 셈법에 놀랐다. 이럴 때는 좀 헷갈린다. 냉장고 냉동실에 샴푸를 넣는 엄마라고 해서 온전한 정신이 아닌 건 아니다. 그러면 언제 이렇듯 말짱한 정신이 홀연히 돌아오는 걸까. 스킨과 로션을 바르고 영양크림까지 꼼꼼히 톡톡 두드리면서 엄마가 말했다.


 "내 정신 좀 봐라. 화장품 여기다 놓고 그렇게 찾아댕겼네. 잊어버리기 전에 아예 내 가방에 넣어야겠어."
   
   
서산에 갔을 때 엄마가 내게 화장품세트를 내밀었다. 늙은이가 화장품이 뭔 소용이냐며 있는 것도 아직 반 넘어 남았다면서. 돈 아낄 줄 모르고 또 사왔다고 남동생을 타박했던 엄마가 화장품을 도로 가져갔다. 
   
   

*외할머니
치매가 발병하기 직전 엄마가 들려준 외할머니 이야기는 가정폭력의 이미지로 다가온다. 엄마가 기억하는 당신의 엄마는 흰 저고리에 검정치마를 입은 신여성인 듯하다. 아이들을 가르치고 사람들이 진선생이라 불렀단다. 진선생은 남편과 불화가 심했다. 밖에 나간 남편은 자주 술에 취해 돌아왔다. 부부싸움이 이어졌다. 폭력을 가하는 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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