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노가 집으로 들어 왔다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4/02/14
그림책 2.  <달은 누구의 것도 아니다> 토비 리들 글 그림, 김이슬 옮김 /책 읽는 곰 /2023년 


‘숙 피아노학원’은 영숙의 이름 끝 자를 땄다. 피아노는 1대다. 영창악기에서 나온 중고품으로 조율을 받았다고 했다. 학원이면서 자취방인 독산동 주택가. 문을 열면 4절 크기의 카라얀 초상화가 벽에 걸렸다. 카라얀의 흑백 그림은 초상화를 배우고 처음으로 완성한 그림이다. 그걸로 끝이었다. 내 그림이 영숙이 학원에 걸린 것 만으로 보람이었다.
   
   
클라이브는 남들과 어울리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도 친구 한두 명 정도는 있다.
가장 많이 만나는 친구는 아마도 험프리일 것이다.
당나귀 험프리는 도시에 잘 적응하지 못한 야생 동물 중 하나다.
알라딘
영숙을 처음 만난 건 영등포의 한림학원에서다. 정규학교를 다니지 못한 사람들이 중·고등학교졸업자격을 얻기 위해 이곳에 모인다. 영숙이와 나는 중졸학력이 필요했다. 야간수업 4시간. 아주 잠깐 눈을 감았는가 싶으면 순식간에 눈꺼풀이 쩍 달라붙는다. 쉬는 시간에 화장실을 포기하고 책상에 엎드린다. 누군가는 하품을 하고 또 다른 누구는 크림빵에 우유로 빈속을 채웠다. 
   

우리는 검정고시를 치렀다. 중졸이 됐다. 그리고 여전히 공장에서 일했다. 나는 하루 8시간을, 은빛의 납작한 부속을 핀셋으로 집어 주사위만한 부품 안에 끼웠다. 영숙은 미키마우스 인형을 만드는 완구공장에서 일했다. 


미키마우스는 말랑한 플라스틱 인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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