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현철 인증된 계정 ·
2023/11/24

@날렵한펭귄  마당에 썩은 은행나무를 타고 올라간 능소화가 있었는데 지난 장마 때 제비나비가 능소화에 빠져 죽어가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서서히 죽어가는 것 그 자체로도 기이한 기분이 들었지만 꿀에 취해 꽃 깊숙이 몸을 밀어넣다가 어찌할 수도 없이 갇혀버린 상황이 너무나 이상했습니다. 자연만물이 이처럼 무엇인가에 기본적으로 취한채로 살아가는 것이구나 라는 생각이 들면서 여러가지 발상들이 떠올랐습니다. 거기에 어떤 관점을 더해 실체를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어떤 존재(= 이 상황을 지켜보는 나)를 상정하고 이 나비를 꽃에서 꺼내줘야 하나 말아야 하나 정말 고민을 많이 했고- 누군가에게 느껴지는 선의가 어떤 존재에겐 다르게 읽힐 수 있다는 생각까지 뻗어나갔습니다. 거기에서부터 어떤 선의나 악의나 단지 관점의 문제일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흔히 생각하는 선한것과 악한것의 경계가 희미해졌습니다. 아무튼 이런 쓰잘데기 없는 사고를 거친 후에 그 나비를 가만히 내버려두기로 마음 먹었고 며칠에 걸쳐 그 나비를 관찰했습니다. 나비는 자연스럽게 말라 죽어갔습니다. 그리고 며칠지나지 않아 큰장마가 왔고- 수년에 걸쳐 은행나무를 타고올라갔던 능소화가 쓰러졌습니다. 큰비에 썩어들어간 은행나무가 쓰러졌던 것이지요. 그 순간 흔히들 이야기하는 신적인 관점, 혹인 이 모든 과정을 바라보는 어떤 존재에 대해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이 모든 것이 부처님 손바닥 안에 있다는 생각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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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4

@choco1304 너와나를 쓰기 시작한 2016년에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의 '빛을 향한 노스텔지아'를 본 적이 있습니다. 칠레의 아카타마 사막에 얽힌 천문학자, 고고학자, 그리고 칠레 독재정권에 살해당한 사람들의 뼛조각을 찾는 유가족(할머니들)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인터뷰 중에 어떤 할머니가 오빠의 뼈를 온전히(부분이 아니라) 다 찾는다면 편하게 죽을 수 있을 거 같다고 말하는데요, 그 당시 저는 죽음을 엄청나게 공포스럽게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편하게 죽는다'라는 말이 충격적으로 다가가왔습니다. 그 할머니가 말하는 순간이,  의미도 의미지만 음성이 자체가 가지는 아름다움 때문에 저를 한동안 사로잡았는데요- 
아무튼 그 영화를 본 날 밤에 꿈을 꿨습니다. 
우주에서 유일하고 생깔도 형태도 완벽한 복숭아가 보였는데 이상한 점이 있었어요.
분명히 꿈에서 그 복숭아를 생생하게 느끼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눈 앞에 있는 것이 아니었어요. 꿈을 꾸는 그 순간 내 눈 앞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랄지 미래랄지 아니면 여기아닌 다른 어딘가에 분명히 존재하는 어떤 것이었지요. 

너와나를 준비하면서 많은 꿈을 꾸었는데 이것도 그 중 하나이구요. 이런 꿈들이 영화의 몇몇 장면에 많이 영향을 끼쳤습니다. 

이 답변을 하다보니 아직 돌아오지 못한 뼈들이 생각이 나는데요. 특히나 저랑 이름이 같은 남현철군 생각이 많이 나네요. 남현철군의 아버지가 목포신항에 인양된 세월호를 보면서 마치 말을 걸듯이 세월호와 대화를 했다는 글이 떠오릅니다. 

그 다음으로 본 파트리시오 구스만 감독님의 작품이 현재 너와나가 상영중인 씨네큐브에서 봤던 자개단추였습니다. 바다에 비밀리에 버려진 유해들에 대한 이야기였던 거 같네요. 
아무튼 그런 꿈을 꾸었고 아직도 진도와 제주사이의 바다에는 아이들 영혼의 일부분이 떠돌고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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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Nueim 글쎄요, 살면서 생각이 변할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지금 당장은 잃어버린 무엇을 마음 속에 잘 묻어두고 해야할 일들을 하려고 할 거 같아요. 종종 이 세상을 떠난 대상을 떠올리면 어떤 질문들을 하거나 말들을 하긴 해요. 그 과정이 일종의 기도라거나 애도의 과정처럼 느껴지는데요- 모두가 이런 과정을 통해서 슬픔을 다른 동력으로 바꾸고 계속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합니다. 상실은 다른 만남을 통해 극복이 되고 그로인해서 삶이 아름다워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 물론 가상세계에서 누군가를 만나는 것이 어떤 분들에겐 해소의 과정이 될 수도 있겠지요.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난다.’ 라는 것인데- 꼭 기술의 발전, 혹은 영적인 체험을 통해서만 어떤 만남이 이루어지는 것은 아닌 거 같아요. 

하지만 만약 이런 기술이 상용화가 된다면 한번쯤은 비욘세가 되어보고 싶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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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2

@Kyo181  작년 한해 동안 린 마굴리스의 책들을 읽다가 요새는 어린이용으로 나온 곤충백과를 읽고 있어요. 더불어서 사회과학 쪽을 공부해보고 싶다는 생각도 들기 시작했구요. 자본이 어떻게 움직이는지도 거시적인 관점에서 알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여러가지 분야와 스케일을 오가면서 그 사이의 연관을 찾는 것이 저한테는 그 자체로 흥미로운 작업인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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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alsld0822 굿즈와 관련해서는 제가 알고있는 것이 없네요! 제주도 영상은 제가 뭔가 여유가 생기고 여건이 맞는다면 편집할 생각을 가지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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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prussianbl 요새 여러가지 일로 다이어트를 하고 있어서 주로 생오이 다시마 두부 같은 것들을 먹고 있어요... 오이는 쌈장 찍어먹고 두부에는 간장 뿌려서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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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4

@꼬구마돈까슈 관객분들이 마음껏 물고뜯고씹고즐겨주시면 기쁠 거 같아요. 오히려 영화가 제 손을 떠났는데 작품에 이러저러한 이야기를 제가 덧붙이는 게 이상한 상황인 거 같구요! 제가 어떤 정답을 제시해드리는 거 같아서 종종 마음이 불편하기도 합니다. 유리병에 편지를 넣어서 파도에 떠나보냈는데 이걸 누가 볼지, 본 사람 반응이 어떨지, 의도가 제대로 전달되었을지 전전긍긍하는 것은 창작자로서 그리 건강한 태도는 아닌 것 같아요! 영화를 찍으면서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영화를 만드는 그 순간 뿐이지 그 외에 것들은 너무나도 부차적인 일들인 거 같구요! 아무튼 하고싶은 말은 너무 신경쓰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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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4

@ewwq456 어릴 때 소설가였던 어머니의 작업을 곁에서 지켜보면서 어머니의 글들이 가진 한계에 대해서 어렴풋이 생각을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 시절 미군 성범죄 피해 여성들에 관한 소설들을 쓰셨는데- 그 당시 역사적 사회적 상황과 어머니의 삶이 너무 밀접하다보니 거기서 느껴지는 분노나 어떤 판단들이 창작자로서 거리를 둘 수 없는 환경이라고 느껴졌고 그로인해 작품이 다소 선언적이라거나 입체적이지 못하다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이야기를 하는 사람으로서 항상 어떠한 사건이나 인물을 입체적으로 다양한 관점에서 파악하려고 하고 일종의 보편성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묵혀두고 다시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필요한 거 같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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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휴니  예전에는 그런 낭만을 조금 가지고 있었던 것 같은데요- 요새는 변하지 않는 것,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걸 절실하게 느끼고 있어요. 영원히 나를 지탱해주고 아주 눈부시고 단단해서 변하지 않을 것 같은 순간들 역시 여지없이 변하고 사라진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모든 것이 변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고 해서 이게 어떤 비관으로 읽히지는 않았으면 좋겠네요. 저는 오히려 이런 생각을 거치고나면 마음이 편안해지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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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yeyoon.suh 단순하게 이 영화를 사건의 당사자분들이 보셨을 때를 항상 떠올렸습니다. 그래서 내부적으로도 이야기를 많이 나눌 수 밖에 없었구요. 하지만 영화가 개봉하고 어쨋든 상품으로서의 포장과정을 거치는 과정을 포함해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와 말들을 덧붙이는 이 순간까지 일종의 죄책감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다루는 사람, 특히나 영화라는 매체를 통해 그것을 이야기하는 사람으로서 숙명적으로 짊어질 수 밖에 없는 감정인 것 같아요. 이후에 반성과 개선의 과정을 거치더라도 또다시 어떤 감정들을 겪을 수 밖에 없을 거 같구요. 이런 생각을 끊임없이 하다보면 결국 아무것도 하지않는 것이 가장 낫지 않나? 하는 회의감에 빠지기도 하는데요- 대상을 염두에두고 쓰는 글,  특히나 이것이 산업이 가진 소란스러움과 연관되어서 요새는 생각이 많이 바뀌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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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안산역 아홉시반 9회차 관람 감사합니다. 애초에 같은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관객을 염두에 두고 만든 영화라서 해외영화제에서 상영을 할 때 어떤 선택들을 해야했던 거 같아요. 
달시 파켓님께서 영어 번역에 참여하신 게 맞습니다!
음악감독님께서 엔딩크레딧이 올라갈 때 아주 낮은 음역대의 음을 깔자고 제안을 주셨고,
저 나름대로 눈에 보이는 것도 확실하게 들리는 것도 없지만 분명이 여기 어딘가 존재하는 무엇이라고 해석을 하고 결정을 내린 것 같아요.
블루레이에 대해선 아직 딱히 정해진 바가 없습니다. 
차기작에 관해선 아직 구체적으로 정해진 것은 없구요. 일단은 에너지를 모두 끌어다가 쓴 거 같기 때문에 좋은 걸 보고 좋은 걸 많이 먹으면서 쉬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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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JoR 일단 사람들과 소통할 때 절대 진지해지지 않으려고 합니다. 농담과 유머가 필수이구요. 제가 하는 이야기가 너무 비장해보이지는 않을까 항상 경계합니다. 그런 다음에 스텝들과 쓸데 없는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고 맛있는 거를 많이 사줘요. 그리고 어떤 기회가 생긴다면 스텝들과 무엇인가를 함께할 수 있는 여정 같은 것들을 마련해요. 그 여정에서 서로가 공유한 것들이 결과적으로 작업물에 영향을 미치게 되는 것 같아요. 여기서 무엇보다 중요한 태도는 내 이야기가 내가 느끼고 있는 것 만큼 다른 사람들한테도 중요한 것은 아니다라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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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1

@prussianbl 안산 원고잔공원에 저희 영화에 나왔던 정자가 있구요, 그길로 곧장 동산을 내려가면 큰 길에 세월호기억교실이 있는데 가는 김에 거기도 다녀오시면 좋을 것 같아요. 올여름엔 제주도에 다녀왔는데 지도에 나온 곳 말고 무작정 해안을 따라 걷다보면 수영하기 좋은 곳이 많이 나온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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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3

@예진  어떤 감정에 들떠서 움직였다가 좌절하고 무력해지고 의 반복인 거 같은데요 ㅎㅎㅎ 중요한 것은 반드시 어떤 행위를 해야 그에 따른 일들이 벌어진다는 것이었어요. 그것이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일어나서 산책을 한다거나 요리를 해먹는다거나 편지를 쓴다거나 청소를 한다거나 하는 것들이요. 그래도 정말 아무것도 못하겠다! 라는 생각이 들때는 누워서 호흡에 집중을 해요. 이렇게 사소한 것들로부터 시작되는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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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11/22

@nene1617 너와나를 준비하면서 둘리도 실사화를 해보고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주제곡이 너무 슬펐거든요. 그래서 그 당시 목포로 가는 기차 안에서 15장 짜리 트리트먼트를 썼어요. 그 뒤로 발전된 것은 없고, 아무런 비전도 없지만 언젠가 산업이 허락한다면 시나리오라도 써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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