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구꽃 피는 홈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4/02/12

 그림책 1. <여우> 마거릿 와일드 글, 론 브룩스 그림, 강도은 옮김/파랑새 
   
쉬흔 넘어 취업이 됐다. 사회복지사자격증을 취득하고 한 달이 좀 지나서였다. 초중고 여자청소년들이 공동가정으로 생활하는 그룹홈(홈)이었다. 아이들 7명에 원장과 보육사인 나, 총 9명이 한 집의 구성원이다. 원장은 이모1, 보육사인 나는 이모2였다. 복지기관이지만 문 앞에 간판이나 기관을 알리는 표시는 어디에도 없다. 일반 양옥에 대문을 들어서면 좁고 긴 화단이 나 있고, 마당엔 살구나무가 우뚝 섰다. 
   

그림책 <여우>는 쉽지 않다. 거듭 읽었다. 결국 ‘조심조심, 비틀비틀, 폴짝폴짝,’ 자기의 날개가 되었던 친구를 만나기 위해 먼 여행을 떠나는 까치의 시작을 기도하는 마음으로 응원하고 있다. 그 길이 너무 느리고 불안하며 위험해도 진심을 향해 내 딛는 걸음이기에. 
   
   
개와 까치, 여우에서 생각이 멈출 때마다 나무 한 그루가 불쑥 내 앞에 나타났다. 벚꽃 피기 전, 연분홍꽃잎이 가지마다 바글바글 달라붙은 살구나무다. 다인과 수인은 나무에 기대 손가락 브이를 턱 끝에 붙이고 인증샷을 찍어댔다. ‘이모~, 여기 서 봐요. 사진 찍어 줄게요.’ 라며 과장되게 외치던 수인이 목소리가 지금도 생생하다. 아이들 사진엔 함박눈처럼 꽃잎이 펄펄 내렸다. 
<여우> by알라딘


아이들은 저마다의 상처를 안고 홈에 들어왔다. 초등학교6 학년 다인과 중학교 3학년 수인은 내가 입사할 때부터 우애 좋은 자매 같았다. 둘은 이름 끝 자가 같아 더 자매처럼 느껴졌다. 수인은 가끔 학교 가는 길이 헷갈려서 지각했다. 체육복을 누가 빌려갔는데 돌려주지 않았단다. 수인도 누군지 잊어버렸다. 학교친구들이 종종 수빈의 ‘경계’인 점을 이용했다.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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