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은
홈은 · 15년차 집돌이
2022/12/19
온 우주가 아르헨티나메시를 응원하는 와중에도 동점을 뽑아낸 프랑스의 엄청난 정신력에 감탄하다 늦게 잠들어서 아직 미몽사몽이지만 가수면 상태로 글을 쓴다. 한 회사에서 길어야 4년을 버텼던 나와는 달리 배우자는 입사 후 지금까지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직급에 따른 계열사 보직 발령도 이직이라면 이직을 한 것이겠지만 홀딩스를 벗어난 회사는 다닌 적이 없다. 배우자 곁에서 지켜보며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꺼내본다.

# 1

IMF 이후 불안한 취업시장과 넉넉하지 못한 가정환경 사이에서 고민 끝에 취직을 하기로 결정했다. 같은 학교 같은 전공 같은 학번이지만 경제적 격차가 큰 동기들과는 같은 선택을 할 수 없었다. 편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지속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다. 사람들은 쉽게 잘렸고 기업은 넘치는 사람들 중에서 직원을 고르면서도 뽑을 사람이 없다고 하소연하던 시절이었다. 20대 중반에게 은퇴는 너무나 먼 이야기지만 입사 기준 중 하나로 은퇴시기를 고민해야 했다. 대학원을 졸업하면 더 높은 연봉과 좋은 일자리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대학원 학기를 마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대규모 취업 시즌을 놓칠 수 없었다. 그래도 지금의 20대보다는 상황이 나았다. 하고 싶은 일을 골라 지원서를 내도 합격할 수 있던 시절이라 선택이 가능했다. 하고 싶은 업무 위주로 지원서를 제출했고 그중 몇 개의 회사에서 연락이 왔고 연봉이 낮은 공기업과 조직 분위기가 좋지 못하다는 우량기업은 입사를 포기했다. 괜찮은 연봉을 제시하면서 근무환경이 나쁘지 않은 생소한 회사를 골라 입사했다. 이유는 돈 때문이었다. 공기업에서 장기근속 후 사기업 이사로 가는 것이 당시에는 가장 안전하고 오래 일할 수 있는 길이었다. 하지만 박봉을 견뎌야 했다. 잘 나가는 대기업은 입사자가 너무 많아 경쟁이 치열하니 승진에서 밀릴 가능성이 컸다. 선택한 회사는 초봉이 높았지만 장기근속자의 연봉 상승률이 높지 않은 회사였다. 신생 기업이라 장기근속 케이스도 전무했다. 알고 있었지만 그 이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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