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의미를 고찰하다] “아킬레우스여, 밥은 먹고 싸우는가?”
2022/07/25
일반적으로 <일리아스>는 그리스 신화의 한 부분으로, ‘트로이 전쟁을 배경으로 한 신들과 영웅들의 이야기’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렇게 받아들이면 <일리아스>라는 작품의 매력을 상당 부분 놓치게 된다. 오히려 다음과 같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리아스>에서 신들은 신답지 않고 영웅들은 영웅답지 않다. 신들의 거룩함, 전지전능함보다 변덕과 편파성이 부각되며, 영웅적인 활약상보다는 일상의 문제, 특히 ‘먹고 사는 문제’가 부각된다. 이런 점에서 <일리아스>는 현실(일상)에 발을 붙이고 있는 텍스트라 할 수 있다.
<일리아스>처럼 오래된 글을 읽는 건 내키지 않는 일이다. 일단 멀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우리가 읽는 대부분의 세계문학이 19-20세기 작품인 걸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일리아스>와 나 사이에 어떤 연결고리가 있을 수 있을까?’ 다르게 표현하면 ‘과연 재미가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도 당연하다.
<일리아스>는 ‘트로이 전쟁 이야기’이다. 트로이 왕자 파리스는 당대 최고의 미녀 헬레네와 눈이 맞아 그녀를 트로이로 데려간다. 문제는 헬레네가 스파르타 왕 메넬라오스의 아내였다는 것. 이에 메넬라오스의 형인 뮈케네 왕 아가멤논을 중심으로 트로이 원정을 위한 그리스 연합군이 조직되고 이후 10년에 걸친 전쟁이 벌어진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알고 있을 이 설명은 <일리아스>의 줄거리라기보다 배경 설명에 가깝다. 텍스트 바깥에서 이미 일어난 일인 것이다. <일리아스>는 10년 전쟁의 마지막 50여 일 동안의 일을 다룬다. (게다가 대부분의 분량은 마지막 4-5일 간 벌어진 치열한 전투에 할애되어 있다.) 마치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가 2차 대전의 여러 국면 중 ‘노르망디 상륙작전’의 며칠 동안에 집중하고, <덩케르크>가 ‘덩케르크 철수작전’에 포커스를 둔 것과 비슷하다.
말하자면 고대의 서사시인은 트로이 전쟁의 전체 진행 양상을 순차적으로 하나하나 서술하지 않고, 대신 10년 전쟁 중 가장 흥미진진한 대목을 골라 청중들에게 들려준다. 이러한 선택과 집중 전략으로 인해 <일리아스>는 흥미로운 이야기로서 오랜 세월을 버텨낼 수 있었을 터, 여러 사건 중에서도 시인이 특히 조명하는 건 ‘아킬레우스의 분노’다. 서사시의 첫 행은 이 시가 무엇에 관한 이야기인지를 명시한다. “노래하소서, 여신이여! 펠레우스의 아들 아킬레우스의 분노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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