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승아
신승아 · 삐딱하고 멜랑콜리한 지구별 시민
2023/09/29

어떤 책은 제목이 곧 내용이다. 의도와 목적이 일치하고, 교훈 주의가 짙다. 독자들은 저자의 인생역전 스토리를 읽으며 '나도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을 얻거나, '저런 사람도 살았는데.'라며 위로받는다. 불과 10년 전이었으면 나 또한 이 책을 읽고 감동했을지 모르겠으나, 지금은 아니다. '개천에서 용' 나는 사회는 바람직하지 않으며, 설령 개천에서 용이 나더라도 다시금 소리 소문 없이 개천으로 빨려 들어갈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다만 내 이목을 끈 것은 제목에서 드러난 미국 사회의 부조리와 궁지에 몰린 사회적 약자가 택한 '방법론'이다.

'리즈 머리'의 가족은 '정상' 범주에 속한 적이 없다. 리즈의 어머니는 가정 폭력이 난무하는 집을 피해 13살에 가출했다. 그는 심부름센터 잔업과 매춘으로 생계를 꾸렸고, 급기야 마약에 손대게 된다. 운명처럼 12살 연상의 남자와 사랑에 빠져 결혼하고 두 딸을 낳았지만, 마약 중독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부부는 매월 1일, 정부 보조금이 입금되기 무섭게 '코카인'을 대량 구매했다. 비정상적인 나날 속에서 자매가 배불리 먹을 수 있는 날은 단 5일뿐, 나머지 25일은 치약과 챕스틱, 썩은 음식으로 허기를 달랬다.

제 몸 하나 돌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집과 아이들을 잘 보살필 리 만무하다. 집구석은 쓰레기 더미로 변했고, 아이들의 머리에서는 이가 드글드글 끓었다. 어린 '리즈'는 밤이면 밤마다 마약을 구하기 위해 길을 나선 부모를 기다리며 뜬 눈으로 날을 지새웠다. 삶을 집어삼킨 불안은 일상을 망가뜨렸다. 학교도, 집도 안전한 곳은 없었다. 결국, 결석 일수가 늘어나면서 학업을 포기하게 된다. 설상가상 어머니가 '에이즈'에 걸리고, 지긋지긋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브릭'이란 새 남자 곁으로 떠나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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