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페미니스트입니다.

주희 · 동물권, 인권에 대해 고민합니다.
2023/08/17
저는 가정폭력 피해생존자입니다.

저희 아버지는 당신께서 기분이 좋으신 날에 딸들이 좋아하는 과일로 화채를 만들어 주는 게 취미였던, 무척 다정한 분이셨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분노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사람이었습니다.

저는 폭력을 보고 듣고 자라면서 사람이 잘못하면 맞아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누구도 어렸던 저에게 폭력이 잘못된 거라고 가르쳐 주지 않았고, 엄마가 경찰에 아빠를 신고하면 '가정사에 개입할 수 없다'는 답만 돌아왔습니다. 때문에 어렸던 저는 '엄마가 뭔가 많이 잘못을 해서 아빠한테 맞는구나, 아빠가 화가 많이 났나보다' 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중학생이 되었을 즈음, 태어나서 (혹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한번도 부모님께 맞아 본 적이 없다는 친구들의 말에 충격을 받았습니다. 다른 가정도 다 우리 집 같을 줄 알았거든요. 그때 아빠의 분노에는 생각보다 맥락이 없음을 발견했습니다. 밥을 먹으면서 얘기하다 밥풀을 흘렸다는 이유로 날아오는 수저통을 맞아야 했던 것이나 허락없이 타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다고 밟혔던 것, 감히 아빠에게 tv나 컴퓨터를 양보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입에 담지 못할 욕을 들어내야 했던 것들이 무언가 잘못되어 있었음을 조금씩 깨달았습니다. 엄마의 가출로 인해 집에는 엄마가 있는 날보다 없는 날이 더 많았던 시절, 전학 간 친구를 오랜만에 만나러 성남에서 남양주까지 갔던 저는 '아빠가 불을 내려 한다, 무섭다'는 동생의 연락에 먼 길을 돌아와야 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는 그런 아빠가 집을 장악하는 것이 싫어 더 대들었고, 더 때리라 하고 더 맞았습니다. 그때마다 출동한 경찰들은 상황만 대충 중재시킨 채 금방 자리를 떴습니다. 나중에야 들은 이야기지만 당시 출동했던 경찰관 중 누군가 저희 엄마에게 '딸이 그만 좀 신고하게 하라'고 했었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죽어야만 이 굴레가 끊기겠구나 싶었습니다.

고등학생 때, 이렇게 살다가 내가 살해당하거나 스스로 살인을 저질러 버릴 것 같아 엄마의 도움을 받아 자취방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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