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arl

144일 전

특수교육대상학생을 가르치다 보면
교육과 돌봄(또는 가정교육)의 경계가 모호한
요구를 받을 때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아침에 간단한 음식을 먹게 해달라던가,
개인 신변처리 관련 요구 등)
가정의 어려움을 이해하기에
기꺼이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누군가는 그런 마음을 이용해 너무 당연하듯 요구하고
누군가는 그것은 교사가 할 일이 아니라며
단호히 거절해야 한다고 합니다.
적절한 선을 지켜가며 인간적인 호의를 행하기 어려운-
어느 정도까지 수용하는 것이 좋을까요?

현실적이면서도 해결이 어려운 질문입니다.

말씀하셨다시피 특수교육에서의 어려움이 이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구도 잘 알려주지 않아서 혼자 처리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 비장애 학생의 경우는 교사에게 개별적으로 자녀에게 음식 먹이는 부탁을 하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주 엄청난 예외의 경우를 빼고는.

특수교육의 경우는 교과 못지않게 생활교육이 중요합니다. 생활중심 혹은 경험중심 교육과정이라고도 합니다. 이런 것을 의식, 혹은 무의식으로 아는 교사들은 학부모가 ‘우리 애가 아침을 굶었으니 아침 좀 먹여주세요’라는 부탁을 거절하기 쉽지 않습니다. 교사의 당연한 역할로 생각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지요.

저는 어떤 일을 권리와 의무, 책무성 등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돈을 받고 일하는 경우에는요. 자원봉사는 좀 다르게 생각합니다. 돈을 받지 않는 일들은 내가 할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을 받기 때문에 해야하는 의무라면 싫어도 해야 합니다. 그렇더라고, 의무가 아니면, 내 가치관과 역량, 상황에 따라, 내 의지에 따라 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말씀하신 것이, 해서 내가 기분이 좋으면 하는 것이겠고요. 같은 부탁이라도 사람에 따라 다를 수 있다는 것도 고려하시고요.

그렇지 않더라고, 상대의 부탁이 살짝 무례하고 기분이 나쁠 수 있지만, 해 주는 것이 해 주지 않는 것보다, 불필요한 감정 소모를 하지 않을 것 같으면 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기회비용이라는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지요. 조금 찝찝한 기분이, 부딪히는 것보다 나은 경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제 개인적인 생각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사람마다 느끼는 것이 다를 수 있기에 참고만 하십시오.

내가 해야 할 의무도 아니고, 상대의 부탁이 무례하고, 무례하지는 않지만, 지속해서 피곤하고 짜증 나게 하는 것이라면, 부탁을 거절하는 쪽으로 생각하겠습니다.

평소에 교사와 협조가 잘 되는 경우라면 이해하려고 노력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시적인 부탁은 그러려니 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사람 사는 것이 꼭 권리와 의무로만 해결되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생각을 달리하겠습니다. 사사건건 교사를 무시하는 언행이 깔리고, 당연한 권리로 요청하는 경우라면, 저는 단호하게 거절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사들은 교사라는 직업 특성상 무리한 부탁임을 알고도 거절하기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의무도 책임도 요구되지 않는 것에 구태여 에너지를 빼앗기면, 정작 본인이 해야 할 중요한, 혹은 중요하지 않더라도, 생각이 분산되어, 제대로 본업을 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들어주어도 사소한 꼬투리로 사람을 힘들게 할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경험상 그렇습니다. 찜찜해서 들어주느니, 깔끔한 거절이 답인 경우가 많습니다. 교사와 학부모와의 관계에서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의무나 책임의 문제가 아니라 학부모가 교사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경우에도, 부탁을 거절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다만 거절시 상냥하고 짧게 답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미리 상황에 따른 연습을 많이 해야 할 것 같습니다. 너스레가 좀 필요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거절의 표시는 분명해야 합니다.

또 다른 중요한 것은 본인이 감당할 역량이 있느냐입니다. 본인의 성향이(소위 말하는 MBTI 등등) 어떤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의무나 책임감으로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거절함에서 오는 예측되는 상황을 스스로 감당하기 힘들어한다면, 차라리 해야 하는 것이 좋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너무 힘들면, 거절을 부지런히 연습해야 합니다. 직업으로 생활할 생각이라면. 학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월급 받는 이유도 아니고.

학부모의 무리한 요구가 비일비재하다면 개인의 노력이 아니라 조직의 힘으로 해결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교사 노조나 교육청 등에 질의해서 근거를 남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부탁을 들어주고 싶지 않은데, 거절해도 위법하지 않는지’ 등의 취지로 물어보는 것도 필요합니다.

자료가 쌓이면 정책을 마련해야 할 것입니다. 밥을 대신 먹여주는 사람을 붙여줄지는 누가 압니까.

지금 학교에서 일어나는 별의별 이상한 상황은 이상하다고 느끼지 않고 자기 권리를 끈질기게 주장한 사람들에 의해서 대책이 마련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학교는 별의별 온갖 집단이 공존하게 되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런 민원이 당장은 우스운 것 같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교장에게 구두로 이야기해야 별 특별한 답변은 없을 듯합니다. 문서로 질의하는 것은 답변해야 합니다. 학부모의 무리한 요구 정도가 심하면하고 반복되면 갑질로 신고하는 것도 의미가 있습니다. 무고죄는 성립되지 않습니다.

거절하기 위해서는 조건이 있습니다. 똑 부러지게 수업하고 아동 관리를 빈틈 없이 잘 해야 합니다. 학교 행정처리에 적극 협조적이어야 합니다.

그래야 거절해도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런 것들을 하지 못하면서 거절한다면, 게을러서, 책임이 없어서, 이런 주변의 평판을 들을 가능성이 높고, 뒤에서 불필요한 험담을 들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거절했을 때도 다른 학부모들이 ‘아, 저 선생님이 그런 것은 이유가 있구나’ 등을 느낄 수 있을 정도로 학부모에게 신뢰받을 수 있어야 거절에 대한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습니다.

요약하면,

특수교육에서 교사의 권리와 의무, 책임감만으로 규정하거나 이해하기 어려운 상황들이 존재합니다. 그 틈을 어떻게 슬기롭게 메울 것인가는 교사의 역량과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습관적이고 무리한 요구는 합리적으로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일시적이고 예외적인 경우는 들어줄 수 있겠지요. 예를 들어, 아파서 그런 경우. 한시적인 기간 명시 등. 다른 학생과의 수업 등에서 방해받지 않는 상황에서.

그리고 학기가 시작할 때, 학부모에게 미리 알리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개인적인 부탁, 식사요구, 신변처리요구 등은 들어줄 수 없다고. 또한 학생의 권리에는 어떤 것이 있는지도 잘 알려줄 필요가 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의무 없는 것을 지속해서 요구하면 강요죄가 성립됩니다. 참고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그런 요구를 하는 학부모들의 경우는 문서(문자)로 부탁을 받고 문서(자)로 답하고, 문서(자)로 과정과 결과, 상황 통보를 기록하는 것이 만일을 대비해서 좋을 것 같습니다.

학부모에게 인정받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면 어쩔 수 없이 들어주셔야 할 것이고요. 학부모가 뒤에서 욕을 좀 한다고 느껴도 다를 그렇게 사는 것이니,그러려니 하는 게 좋을 듯도 하고. 앞에서 욕하면 모욕죄로 고소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좀 당당한 생각을 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학부모의 무리한 부탁이 학교에서 여러 교건이면, 학교별로 대책을 마련하여 학교 차원에서 학부모에게 통고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이 할 수 없기에 관리자가 있고, 나아가 그래서 노조가 필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와 성향이 다르실 수 있기에 참고하시고, 더 좋은 대안을 마련하시면 좋겠습니다.

특정 상황, 지속성, 교사 무시, 본인 성향 등을 고려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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