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닌 건 아니다 - 3. 분홍신 

살구꽃
살구꽃 · 장면의 말들에 귀를 모아봅니다.
2023/12/17

언니는 집에서 딱히 하는 일이 없었다. 뭔가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으로 멍하다가 때가 되면 밥을 먹고 낮에도 잠을 잤다. 엄마는 언니가 아주 온 게 아니라고 했던 말에 행여 또 집을 뛰쳐나갈까봐 노심초사하는 눈치였다. 가출한 언니가 돌아왔을 때 집에 없던 3년여의 공백 때문인지 나는 반가우면서도 왠지 서먹했다. 내가 언니와 자매의 정을 나누던 한 때, 어느 날의 초저녁엔 하이틴을 위한 라디오프로에서 ‘고영수의 세븐틴’이 나오기를 종종 기다리기도 했다. 당시 유행하던 카펜터스나 존덴버 등의 팝이 나오면 둘이 환호하며 귀를 기울였다.
   
   
내가 팝송이란 걸 처음 알게 된 건 순전히 언니 영향이다. 그 첫노래는 ‘마더 오브 마인’으로 언니는 그 노래를 한글로 적었다. 다시 듣게 되면 이렇게 따라 불러보라며 ‘마더 오브 마인’을 ‘마더~ 옵만~’으로 발음하라고 했다. 연이어 발음해야 영어맛이 난나도. 뜻을 알아야 노래가 더 명확해지는 거라고 단어와 뜻을 알려주기도 했다. 거리를 지날 때 어디선가 지미 오스먼드의  맑은 목소리가 들리면, 언니가 보고 싶고 그 언니를 애타게 기다리는 엄마생각에 나는 코끝이 찡했다. 
   
   
영식이 아저씨가 먼저 우리 집에 온 다음 언니가 왔을 때, 엄마는 죽은 자식이 살아 온 것처럼 감격했다. 영식이 아저씨 출현으로 감격의 세기가 조금 누그러졌지만, 엄마는 언니가 몸 상한데 없이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온 게 그저 부처님의 은덕이라고 했다. 
언니, 그동안 어떻게 지냈어? 영식이 아저씨는 어떻게 만난거야? 묻고 싶었지만 나는 왠지 언니 앞에서는 말이 되어 나오지 않았다. 엄마는 가진 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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