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어스름> - 천세진
자전거 페달 밟는 소리, 체인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던 어스름이었는데, 조금만 더 가면 집이었는데, 가다 말고 뚝방에 멈춰 서서 동네를 바라보았는데 굴뚝에서 저녁밥 짓는 연기들이 피어올라 굼뜨게 흩어지던 어스름이었는데, 가끔 불길이 기침을 했는지 왈칵 솟구친 연기들이 뒷산 상수리나무에 엉겨 붙고 있었는데 상수리나무를 끌어안지 못한 것들은 주저주저 산을 넘어가고 있었는데, 산 여기저기 젖무덤으로 솟아오른 이승의 구멍들을 한 번씩 쓰다듬고 갔는데 학교를 마치면 굴뚝을 빠져나간 연기로 살아갈 테고, 굴뚝 속으로 다시 돌아가기 힘들 거란 생각이 뿌옇게 몸을 휘감았다 흩어졌는데
눈에도 매운 연기가 엉겨 그랬는지, 살아오며 생겼을 구멍들을 메우려고 그랬는지, 매운 눈물 주춤주춤 흘러내렸는데 연기 솟는 곳은 모두 깊은 구멍이어서, 눈물로는 못 메울 텐데
- <풍경도둑>, 천세진, 모악시인선,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