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자살은 가해였다. 아주 최종적인 형태의 가해였다.”
(시선으로부터, 정세랑, 문학동네)
2020년,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폭력 사실이 전해진 뒤 세상에 널리 알려진 문장이었다. 그 당시 이 문장을 본 나는 가장 적확한 문장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것이 세상을 꿰뚫는 문학적 문장의 힘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나는 틀렸다. 그 문장은 문학적인 함축이 가능했을지언정, 실제 피해자의 고통을 온전히 전할 수는 없었다. 사건 1년 반만에 피해자가 내놓은 기록들을, 나는 대여섯 번은 끊어서 읽어야 했다. 특히 박원순의 자살 소식을 접한 뒤, 피해자는 거센 공황을 마주해야 했다. 박원순 지지자들의 2차 가해는 그 당시에는 떠오르지 않을 정도였다. 사람이 숨이 끊어졌다는 소식에 피해자는 정신을 거의 잃기 직전까지 이르렀다.
2차 가해로 얻은 고통은 그 다음이었다. ‘피해호소인’이라는 괴상한 조어가 여성 인권을 내세운 국회의원에 의해 탄생했다. 생전 고인을 지지했던 이들은 ‘그 정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