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어느 순간부터 건설업 외길 인생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어느 때도 ‘건축가’라는 장래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 나의 어린시절 희망은 절대로 현장에 있지 않았다. 학자든, 작가든 고고하게 진실과 진리를 파헤치며 나의 옳음을 증명할 수 있는 일만 하고 살고 싶었다.
예술에는 소질도 없었고 안목도 없었다. 가장 하기 싫어하던 것은 ‘색칠공부’였고 기술/가정 시간에 도면 그리고 모형이라도 만든다 치면 수업 시간 내에 실습물을 제출하는 것도 버거웠다. 손재주하고는 거리가 먼 건방진 백면 서생 그 자체였다.
하지만 수험생은 자신이 무슨 일을 벌이는 지도 모르고 건축학과에 지원했고 덜컥 합격했다.
뭔지는 모르지만 5년제 학교였고 마치 미대에 입학한 느낌도 들었다. 2학년까지만 해도 설계 점수도 A 근처를 벗어나지 않았고 스스로 디자인에 재능이 있는 줄로만 알았다.
고비는 3학년이었다. 처음으로 접해보는 법규와 오피스 프로젝트에서 밑바닥 성적을 받았다. 그제서야 마치 복선 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