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출이 관용을 창조한다", 장애인 탈시설 이야기
2021/11/05
미국에 입국하자마자, 아니 미국 땅 밟기 전부터 놀란 지점은 장애인이 지역사회에서 활발히 생활한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선 장애인을 만나본 적이 없다. 장애 인권 운동을 찾아보며 접한 몇 인물이 다였다. 미국에선 비행기에서 내리는 지점부터 휠체어를 탄 장애인 열 명 가량을 마주했다. 지금껏 살면서 본 장애인보다 많은 수였다.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은 비장애인 대기 줄 옆에서 항공 관계자의 도움을 받아 움직이고 있었다. 그들을 쳐다보는 건 나 뿐이었다. 낯선 모습에 저절로 눈길이 갔고 이윽고 스스로가 너무 부끄러워졌다. 그간 정상성 규범이 문제임을 이론적으로 인지하는 것에만 머물러 있었다. 안락하게 비장애인으로서 한국에서의 생활을 영위하다가 막상 장애인을 만나니 내 안의 허점이 드러났다, 나 또한 내면에 정상성 규범을 품고 나와 다른 신체에 대해선 '낯설다'라고 생각하고 있던 것.
미국에 온지 시간이 꽤 흘렀다. 대형마트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장애인들을 보며 드디어 장애인과 비장애인을 구분하지 않게 됐다. 이제는 그냥 쇼핑하는 시민 1로 간주하게 된다.
보다 근본적인 물음. 왜 한국에서는 그렇게 장애인을 찾아보기 힘들었을까? 애초에 왜 나는 다양한 신체를 접할 기회를 갖지 못했을까? 답은 미국과 한국의 탈시설 추진 차이에서 ...
정치학을 배우고 있어요. 같이 크게 크게 때론 조그막하게 이야기 나눠보면 좋겠네요. 멋진 시선들을 기다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