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의 고고인류학 10편 - 벨리즈-과테말라 해묵은 영토분쟁 현재도 '진행 중'

알렉세이 정
알렉세이 정 · 역사학, 고고학, 인류학 연구교수
2024/04/18
필자는 세계적인 분쟁사, 분쟁 지역 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왔다. 특히 멕시코를 제외하고 작은 영토들을 가진 중앙아메리카의 국가들은 무엇보다도 흥미를 끌게 해주는 요소들이 많다. 무엇보다 해묵은 영토 분쟁 중 하나인 벨리즈와 과테말라의 분쟁은 여타 다른 분쟁 지역에 비해 비교적 조용한 편에 속하지만 나름 두 국가 간의 이권들이 걸려 있기에 매우 치열한 상황이다. 따라서 2018년 4월 19일, 과테말라가 이웃 국가 벨리즈와의 영토 분쟁을 해결하고자 국제사법기구에 제소하기로 했고 이 분쟁에 대한 재판은 현재도 진행되고 있다.
벨리즈와 과테말라의 영토 분쟁 - 부산외국어대학교

벨리즈와 과테말라 사이의 영토분쟁은 영국인들이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에 도착할 때부터 시작되었다. 벨리즈 역사에서는 15세기 중반 영국 해적들이 정부의 공격을 피해 숨어 들면서 영국인들이 들어와 정착했고 이 때부터 벨리즈의 영토에 영국의 영향력이 시작되었다. 1821년에는 과테말라가 스페인으로부터 독립한 직후, 멕시코와 과테말라는 벨리즈에 대해 각각 스페인으로부터 주권을 이양 받았으며, 멕시코와 과테말라는 유카탄 지방영토의 일부가 자신들에게 속해 있었다는 이유로 각자 자국의 영유권을 주장해왔다. 그러나 영국은 비록 그들이 해적이었을지라도 과거 영국인들이 널리 정착한 것을 고려하여 두 국가의 주장을 모두 거절하였으며, 멕시코는 영국과 협상을 걸어 벨리즈 지역을 장악하는 대신 1826년에 영국령 온두라스를 승인했다. 그러나 영국의 중앙아메리카에서의 영향력이 약해질 때인 1893년 멕시코는 영국과의 조약을 통해 벨리즈 지역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철회했다. 

이어 1850년부터 중앙아메리카의 다른 국가들은 먼로 독트린에 의해 미국의 영향력에 놓이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이아나와 더불어 먼로 독트린에 포함되지 않았고, 1859년에는 영국과 과테말라 간의 영토 조약을 체결하여 현재와 같은 국경선...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유라시아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 고고, 인류학적으로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문화적 체험을 중시하고 하고 있다
78
팔로워 9
팔로잉 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