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가시성의 퀴어링 : ⟪조선기갈전⟫ 전시 발문

김터울
김터울 · 연구자, 활동가, 게이/퀴어.
2023/11/03
게이커뮤니티의 구성원은 어디에나 있고, 무엇이든 할 수 있고, 어디로든 갈 수 있다. 물론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때로 어디에 있든지 숨죽이고, 뭘 선뜻 하기 어렵고, 아무 델 덥썩 가기 힘들다. 종로·이태원에 가야 마음이 풀리고, 퀴어퍼레이드 때 걸어야 속이 시원한 것은, 그곳 바깥이 어딘가 탐탁치 않음을 의미한다. 또 그렇다는 것은 결국 그 종태원과 퀴퍼조차 낯설고 불편한 누군가가 있음을 뜻한다. 그게 종태원과 퀴퍼의 죄는 아니지만, 그곳이 결국 안 끌린 사람의 죄는 더더욱 아니다.

한번 드러난 것은 쉽게 대표된다. 소수자가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어렵고, 따라서 그들은 일견 대표되어도 좋다. 옛 시절 경찰과 언론에 의해 강제로 얼굴 까이던 가시성의 모욕을, 나 스스로 얼굴 까고 세상에 맞서는 가시성의 자긍으로 바꾼 것은 그 누구도 뭐라 할 수 없는 성취다. 하지만 여기 있는 모두가 그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커밍아웃을 감행할 수 있는 자원과 조건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에게 그토록 간단했던 것이, 누군가에게는 태산처럼 무거울 수 있다. 무엇보다 퀴어의 가시성과 비가시성은 우리가 그은 선이 아니라 애초에 남들이 갈라놓은 선이다. 성적 지향 갖고 뭘 그리 예민하게 구냐던, 살면서 한번쯤은 겪어왔을 천진한 헤테로의 표정처럼.

게이커뮤니티에서 텐션을 끌어올려 흥과 긴장을 돋운다는 뜻으로 쓰이는 '기갈'은, 본래 배고픔(飢)과 목마름(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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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조건을 묻다』(숨쉬는책공장,2015), 『세상과 은둔 사이』(오월의봄,2021), 『불처벌』(휴머니스트,2022,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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