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절의 의식, 낭만, 그리고 상실

박순우(박현안)
박순우(박현안) · 쓰는 사람
2023/09/09
여행을 갈 때마다 엽서를 샀다. 왜 엽서였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경비가 넉넉지 못한 여행객이 가장 손쉽게 살 수 있는 기념품이 엽서였을까. 가볍고 부피가 작으니 지니기에도 적합했을 것이다. 스물다섯, 홀로 떠난 첫 여행지는 유럽이었다. 십육 년 전 일이지만, 개선문이 보이는 샹젤리제 거리에서 판매대를 빙빙 돌리며 엽서를 골랐던 기억은 선명하기만 하다. 보통 1유로면 살 수 있는 엽서를 당시 나는 거의 두 배를 주고 샀다. 에펠탑과 샹젤리제 거리, 몽마르트르 언덕이 흑백사진으로 담긴 엽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예술작품 같았고, 가난한 여행객의 지갑은 속절없이 열렸다.

내가 수집하려고 산 엽서도 있었지만, 친구들에게 보내기 위해 엽서를 구입하기도 했다. 베르사유 정원에 앉아 보고 싶은 얼굴들을 떠올리며 엽서를 적었다. 어떤 내용이었는지는 기억에 남아 있지 않다. 친구에게 보낸 엽서가 어떤 그림이나 사진을 담고 있었는지도 완전히 잊어버렸다. 스마트폰이 흔한 시절이었다면 일일이 사진을 찍어 남겨 두었을 텐데… 어쩌면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이라 더 열심히 엽서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지금이라면 사진을 실시간으로 전송할 수 있었겠지만, 그때는 그렇지 않았으니까.

혼자가 만족스러웠지만, 숨 막힐 듯 아름다운 풍경 속에 앉아 있을 때면 그리운 얼굴들이 뭉게뭉게 떠올랐다. 혼자이면서도 함께일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내게는 엽서 쓰기였다. 나누고 싶은 풍경을 담은 엽서에 두서없는 사유들을 나열하곤 멀리 있는 친구에게 보냈다. 감정 표현에 미숙한 사람이었지만 함께 보고 싶다는 마음을, 함께 있고 싶다는 마음을, 서툴게나마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수많은 엽서들. 어떤 시절의, 어떤 공간의 유일한 증거. ©unsplash

엽서를 보내려면 우체국으로 가야 했다. 새로운 도시에 도착하면 여행안내소부터 들러 그 지역 지도를 받았다. 지도에서 우체국을 찾아 동그라미를 그렸다. 짧다면 짧은 여행의 순간을 쪼개어 일부러 도시마다 박혀 있는 우체국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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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저것 씁니다. 『아직도 글쓰기를 망설이는 당신에게』를 펴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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