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년 전 군대 이야기(11) 군인극장과 유격훈련장-피땀과 눈물 그리고 휴식
대한민국의 젊은이로서 군에 입대하여 나라를 위하여 애국 봉사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영광스러운 일이었다. 숙식과 의복 등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뿐 아니라 작은 금액의 봉급도 지급되었다. 보수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작은 금액이었으므로, 군복무는 젊은이들에게 애국 봉사의 시간이 될 수밖에 없었다. 국가는 수많은 젊은이들에게 애국 봉사할 기회를 제공하였고 국민들은 돈 보다 더 귀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었다. 위 1970년대 사병의 봉급표를 참고해보면, 내가 입대하던 해인 1974년도에 병장은 1560원, 상병은 1370원, 일병은 1170원, 이병은 1040원의 월급을 받았다. 이것도 1970년도에 비하면 약 70%가 상승된 금액이었다. 1975년도 자장면 가격이 138원이었으니, 상병의 봉급 1,370원은 자장면 10그릇 값과 같은 금액이었다.
1975년의 급여는 1974년과 똑 같았고, 1976년에는 1975년 대비 45%가 인상되어 병장, 상병, 일병, 이병의 봉급은 각각 2260원, 1990원, 1700원, 1510원이었고 내가 제대했던 1977년에는 전년 대비 28%가 인상되어 병장 급여가 2,890원이었다.
참고로 자장면 가격은 1970년도 100원, 1975년도 138원, 1979년도에는 277원 정도였고, 담배 한 갑(20개비)의 값은 신탄진이 60원, 청자100원이었고, 지하철 승차료는 1974년 개통 당시 30원이었습니다. 1964년 처음 55원(한국영화 기준)으로 시작한 영화 관람료는 1970년 200원에서 1975년 500원, 1980년 1500원으로 상승했다고 한다.
내가 복무했던 부대가 위치했던 포천군 이동면은 휴전선에서 약 35km 남쪽에 위치한 삼팔선 이북의 작은 동네였다. 휴가나 출장을 서울로 나왔다가 귀대할 때에는 서울 마장동 시외버스터미널에서 포천 일동행 시외버스를 타야했다. 버스는 의정부 축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