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장례식에 친구들 초대한 여자의 속사정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5/08
좋아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외부세계와 접점이 없어 옛 모습 그대로 보존된 어느 원시 부족에 한 학자가 들어가 살며 겪었다는 이야기다.
 
여느 문화권에서도 그러하듯 언어는 그를 써온 이들의 온갖 특성이 고스란히 녹아 있는 사회적 자산이다. 어느 언어에선 십 수 가지 풍요롭게 분포하는 단어가 다른 언어에선 단 하나 쯤으로 퉁 쳐지곤 한다는 건 꽤나 유명한 일화다. 어느 언어엔 있는 말이 다른 언어에는 없어서 번역이나 통역을 할 때 곤란을 겪는 경우도 심심찮게 있다. 지구촌, 세계화란 말이 쓰임을 잃을 만큼 뒤섞인 이 시대에도 그런 단어가 있는 것인데 하물며 고립된 원시 부족이랴.
 
내가 좋아하는 이야기도 꼭 그와 같다. 학자가 원시부족에 들어가 함께 지내며 산 지 한참이 흘렀을 즈음, 그는 이 부족에게 어떤 단어가 존재하지 않는단 사실을 알아챈다. 내일이다. 어제란 말도, 오늘이란 말도 있는데 내일이란 말이 없었단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느냐 싶겠지만 그럴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야깃거리가 되는 것이고.
 
▲ 굿바이 트라우마 스틸컷 ⓒ 반짝다큐페스티발

단어 하나가 바꿔내는 삶이 있다

흥미로운 건 어느 단어가 없는 것이 그저 없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학자가 오래 머물며 이 부족의 여러 특징점을 연구한 바, 이 부족에겐 미래와 연관된 온갖 개념들이 아예 없거나 상당히 약한 정도만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고 한다. 이를테면 희망이며 꿈, 저장, 저축, 인내 같은 것들. 비슷한 환경의 다른 부족에 비하여 내일을 예비한 여러 특징들이 잘 나타나지 않으니 이 부족의 여러 풍습들은 현실에 충실하고 과거에 집착하는 모습으로 나타났다고 했던가. 말하자면 단어가 있어야 비로소 그와 연관된 온갖 개념이 활성화된다는 현대철학의 이론을 이 같은 연구가 뒷받침하고 있는 것이다.

굳이 이 이야기를 꺼낸 건 한 다큐멘터리 때문이다. 제2회 반짝다큐페스티발 일곱 번째 섹션의 마지막 작품으로 상영된 <굿바이 트라우마, 우리들의 장례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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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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