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상주의자
공상주의자 · 단상을 씁니다.
2023/01/31
90대 노인의 이동권 (2) - 보장의 주체
당신은 죄가 없었다. 그저 물건 하나를 옮겨다 놓으려고 했을 뿐.
나에게도 죄가 없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다. 몸과 마음이 여러 개가 아닐 뿐이니.

연약한 육체가 무게 중심을 잃고 휘둘린 그 찰나의 순간이 슬로우 모션으로 지나간다. 찡그린 이마, 당황한 표정, 그리고 황급히 앞으로 뻗은 손. 나는 그 짧은 구조의 기회를 잡지 못했다. 할머니가 고관절을 다치게 된 것은 그렇게 순간적이고 허무한 몇 초 때문이었다. 당신이 물건을 내려놓고 의자에서 일어나고자 했던 그 순간, 스텝이 꼬여서 살짝 엉덩방아를 찧었을 뿐이었다. 이제 막 걸음마를 타는 아이라면 수천수만 번을 반복하고도 남을 그런 넘어짐이었다. 노인의 뼈가 유아의 그것보다 약하던가? 그 엉덩방아 한 번에 고관절이 부러져버렸다. 그녀는 도저히 일어나지 못해서 응급실로 실려갔으며, 수술을 하고 몇 주는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코로나 때문에 더욱 지난했던 병원 생활을 마치고 나오는 기쁜 퇴원날. 다시는 뵙지 말자는 간호사들의 츤데레식 인사가 오히려 정감 있게 느껴졌다. 누워만 있어서 오히려 허리가 펴진 할머니는 오랜만에 쐬는 바깥공기에 함박웃음을 지으셨다. 할머니의 생활이 많이 바뀌게 될 줄은 예상하지 못하셨으리라.

사진 : https://pin.it/12czFID (Pinterest)

그 이전까지는 '보행기'라는 명칭도, 그것이 왜 필요한지도 알지 못했다. 간혹 나이가 지긋한 노인들이 보행기를 끌고 다니는 모습을 무심하게 바라보았을 뿐이다. 노인들 사이에서 고관절 골절이 매우 흔하면서도 위험한 질환이라는 것을 미처 몰랐었다. 할머니가 다치고 나니 그제야 힘겹게 이동하는 노인들이, 30여 년 동안 좀처럼 보이지 않던 이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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