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 숨겨서 데려온 필리핀 불법체류 가정부, 위험한 선택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4/27
'상식'은 그 사회가 갖고 있는 편견을 드러낸다. 이를테면 한국 인구가 5000만 명을 넘고 서울 인구가 1000만 명에 미치지 못한다는 건 상식이지만, 한국에 장기 체류하는 외국인 수가 22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을 아는 이는 얼마 되지 않는다. 특히 한국의 여러 산업이 합법·불법적으로 체류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에게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대중의 무지는 심각한 수준이다.
 
이토록 많은 외국인이 거주하는 것이 현실이지만 그들의 존재는 평균적 한국인의 시선엔 좀처럼 들어오지 않는다. 도심보단 외곽에, 어엿한 택지보단 외딴곳에 모여 사는 이들이 많은 탓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는 분업화된 자유주의 노동의 영역 가운데 격리되고 고된 노동을 이들이 도맡고 있는 영향이 크다.
 
수년 전 어느 재벌 오너 가정에서 불거진 갑질 논란이 세간의 화제로 떠오른 일이 있었다. 당시 그들이 필리핀에서 건너온 입주가정부만 써온 점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필리핀인을 쓰는 이유는, 이들이 한국말을 알아듣지 못해 민감한 대화를 수월하게 할 수 있고, 영어를 잘해 소통이 편하며, 유순한 성품으로 대하기에 좋다는 등이었다. 그로부터 시간이 흘러 어느덧 한국에서도 필리핀 가정부는 완전히 낯선 일이 아니게 되었다.

그러나 누구도 필리핀 가정부들이 어떻게 바다 건너 먼 나라까지 와서 가정부로 일하게 되었는지는 묻지 않는다. 알려들지도 않는다. 누구도 묻지 않아 감춰진 서사, 그 이야기에 주목하는 이가 없었던 탓이다.
 
▲ 영화 <레이징 그레이스> 포스터 ⓒ 이놀미디어
 
아이를 지켜야 하는 불법체류 가정부

<레이징 그레이스> 속 그레이스(제이든 페이지 보아디야 분)는 아직 어린 여자아이다. 학교도 가지 않고 종일 엄마와 붙어 있어야 하는 대여섯 살 그레이스를 곁에 달고 엄마 조이(맥스 에이겐만 분)는 종일 일만 한다. 그레이스가 유치원에도 가지 못하고 엄마 옆에만 있는 건 조이가 불법체류자 신분이기 때문이다. 일정한 거처 없이 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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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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