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석과 상상] <007 스카이폴> 제임스 본드가 히치콕을 만났을 때

허남웅
허남웅 인증된 계정 · 영화평론가
2024/05/09
007 시리즈의 23번째 작품 <007 스카이폴>(이하 ‘<스카이폴>’)은 전작들보다 좀 더 특별한 위치를 점한다. 이언 플레밍의 원작도 없고 연출도 블록버스터와는 거리가 멀었던 샘 멘데스가 맡았다. 게다가 샘 멘데스는 <스카이폴>을 마치 히치콕의 영화처럼 만들어버렸다. 

샘 멘데스는 <스카이폴>의 메가폰을 잡자마자 어떤 스타일의 영화로 만들 것이냐는 질문을 수도 없이 받았다. 그도 그럴 것이 <아메리칸 뷰티>(1999) <레볼루셔너리 로드>(2008) 등 이른바 작가적 개성이 뛰어난 영화를 만들었던 감독이니 상업영화의 최전선에 있는 007 시리즈에 뭔가 다른 색깔을 입히지 않을까 관심을 모았다. 그럴 때마다 샘 멘데스의 답변은 똑같았다. “클래식한 007 영화를 만드는 것이 목표다.”

<골드핑거>(1964)에서 처음 등장했던 본드의 애마 ‘애스턴 마틴 DB5’가 등장하는 <스카이폴>의 스틸이 공개되자 팬들 사이에서는 대니얼 크레이그가 과거 숀 코너리와 같은 스타일의 제임스 본드로 회귀하는 것 아니냐는 둥의 억측이 난무했다. 그런데 웬걸, 샘 멘데스가 언급한 클래식의 지향점이란 007 시리즈의 위대한 유산이 아닌 알프레드 히치콕, 그중에서도 <현기증>(1958)이었다.

히치콕이 007을 연출했다면
007과 히치콕, 언뜻 어울려 보이지 않는 조합이지만, 사실 이 둘의 인연은 예사롭지 않다. 히치콕은 제임스 본드 시리즈의 열성적인 팬으로, 1950년대 초반 이언 플레밍의 소설을 영화화하는 것에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다. 한편으로 <007 위기일발>(1963)이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1959)의 특정장면, 허허벌판 위에서 캐리 그랜트가 농약살포헬리콥터에 쫓기는 장면을 그대로 가져가 본드와 헬리콥터가 벌이는 결투로 만들었다고 불쾌하게 여겼다. 이후에 발표된 <토파즈>(1969)의 경우, ‘히치콕이 만든 제임스 본드 영화’라고 불릴 정도로 첩보영화의 매력을 듬뿍 담고 있었다.
...
얼룩패스
지금 가입하고
얼룩소의 모든 글을 만나보세요.
이미 회원이신가요? 로그인
영화에 관해 글을 쓰고 말을 합니다.
18
팔로워 34
팔로잉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