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균
유한균 인증된 계정 · 출근시간에 우린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
2024/05/03
1. 홍갑표 여사
   
누군가에게 고양을 소개할 때면 중남미문화원은 나의 필살기와 같다. 고양을 방문한다 하면 반드시 추천하는 장소이기 때문이다. 산길로 차를 몰아야 하는 적잖이 외진 곳에 있긴 해도, 한국에 이런 장소가 있다는 사실이 보석 같다. 붉은 벽돌로 이루어진 건물과 이국적인 조각들이 우리를 반겨주는 곳이다. 바다를 건너온 전시물들과 한국적인 정원의 미(美)가 조화를 이룬다. 
   
그런데 이번 방문은 독특했다. 입구에서부터 문화원의 설립자를 우연히 만났기 때문이다. 어느 나이 지긋한 할머니가 방문객들과 사진을 찍고 있었다. 무슨 일인가 싶어 다가가니 큰 소리로 외치셨다.
   
“나? 여기 만든 할머니야.”
홍갑표 여사 @촬영
바로 중남미문화원의 설립자이신 홍갑표 여사님이었다. 91세. 그럼에도 내가 만난 그분은 나이를 잊은 듯한 호방함이 있었다. 그리고 자신이 한평생을 바쳐서 만든 문화원에 대한 자부심과 애착으로 가득하신 분이었다. 사진 같이 찍고 가라면서 나를 잡아끄셨다.
   
“관상이 참 좋네. 혼자 왔으면 나랑 얘기나 하다 가자.”
   
그렇게 갑작스레 예상에도 없던 만남이 시작되었다. 홍 여사님은 이제 무릎이 많이 아프셔서 돌아다니기 힘든 상황이라, 내 손을 잡아 당기며 문화원 이곳저곳을 구경 시켜주셨다. 그리고 자신이 직접 심은 나무들과 모아 온 전시물들에 관해 설명하셨다. 심지어는 당신 부부의 집안까지 소개하셔서 내실(內室) 장식까지 볼 기회를 얻게 되었다.
   
중남미문화원은 한 외교관 부부의 꿈이자 결과다. 이복형 문화원장님은 본래 30년간 외교관으로 근무하며 중남미 지역을 담당했다고 한다. 정년을 맞이하게 된 후, 농사를 짓기 위해 구매한 땅 위에 집을 지었다. 그런데 그동안 중남미에서 수집한 예술품과 유물들이 그 양과 질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나자 결국 박물관 건물을 따로 짓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후에도 미술관, 조각공원, 연구소 건물이 차근차근 더해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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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웠던 공부들이 어느새 거짓말처럼 향 연기마냥 머릿속에서 사라지고 있습니다. 앞으로 나이가 들어도, 그 시절 고민했던 내가 남아있게 글을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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