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새의 기억

바움다후 · 페미니스트
2024/04/13
벌새
벌새의 기억 

   옆 침대 환자와 보호자는 밤만 되면 부스럭거리고, 티격태격 말다툼을 하고, 급기야는 내 침대를 건드리는 통에 며칠째 옅은 잠은 통증으로 예민해진 신경을 더욱 팽팽하게 잡아당겼다. 위중 환자가 대부분인 병실은 무겁고 낮은 고통 속에 신음을 채우고 용도를 파악할 수 없는 장비들에서 나는 기계 소리는 불길하기도 했다. 모두 잠들어야 하는 밤, 멀리 도망간 의식을 붙잡고 침묵 속에 누운 맞은편 건너 환자의 위기 상태가 병실을 긴장으로 훑고 지나간 다음이다. 오늘 밤도 잠은 다 잤다. 병원에서 병을 더 얻을 지경이다.

  시트를 뒤집어쓰고 폰에 매달려서 '지구의 하루'를 보기 시작했다. 장엄한 태양과 함께 깨어나는 지구의 아침은 암울한 병실 상황을 잊어도 좋게 부산스럽고 신비했으며, 나름의 규칙으로 질서정연한 엄숙함이 내포되어 있었다. 그때 오르내리며 꽃에 부리를 박고 날갯짓을 멈추지 않는 벌새를 보았다. 영화'벌새'의 그 벌새다. 영화를 보지 않았다면 다른 동물들처럼 그저 심상하게 보았을 것이다. 버석거리는 신경증과 뻑뻑한 눈, 집요하게 파고드는 통증의 깊이는 화면을 보고 있어도 집중을 방해하고 있던 참이었다. 벌의 공격에도 생명이 위태롭고 빗방울의 무게에도 목숨을 잃을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작은 새. 다 자라야 5센티 정도이고 1초에 90번까지 날갯짓을 할 수 있단다. 세상에, 일초에 90번을……. 거기다 끊임없이 꿀을 먹어야 살 수 있는 벌새의 현란한 날갯짓이 아름답기보다는 안타까운 마음 쪽으로 날아왔다. 사는 건 누구에게나 무엇에게나 녹록하지 않은 모양이다. 벌새를 본 것으로 통증은 조금 가라앉는 듯했다.

  이 벌새의 상징성이 영화가 의도한 것이구나, 깨달았다. 영화로 이미 만났지만 거기 담긴 중의적인 표현들을 알아채지 못했던 것이다. 영화는 잔잔하고 담담하게 나를 이끌었지만 몰입되지는 않았다. 중학생 은희의 성장 영화였다. 화려한 수상 소식들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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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여자로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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