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과 유사역사학

이문영
이문영 인증된 계정 · 초록불의 잡학다식
2023/06/22
북한의 역사학계를 점차 유사역사학이 장악해가고 있다. 이것은 북한의 역사학이 정치에 종속되면서 벌어질 수밖에 없는 필연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유사역사학이란 학문이 아니라 정치적 주장의 사기극이기 때문이다.

고조선 연구를 중심으로 북한 역사학의 변화를 살펴보자.

북한 역사학계는 해방 후 고조선이 요동에 있었다는 요동설을 주장하고 있었다. 1960년대에 리지린의 요동중심설, 도유호의 평양중심설, 김석형의 이동설이 각축을 벌이다가 리지린이 헤게모니를 장악하면서 요동중심설이 굳건히 자리잡게 되었다.

1986년, 김정일은 '우리민족제일주의'를 주창했다. 1989년에는 '조선민족제일주의'로 이름을 바꾸었다. 유사역사가들이 늘 그렇게 주장하는 것처럼, 김정일도 '조선민족제일주의'는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아니라 열린 민족주의라는 주장을 했다. 고난의 행군 시기를 거치며 수령 체제를 옹호하기 위해 이런 움직임은 더욱 강화되었다. 역사학도 이에 발맞추었다.

이런 흐름 속에서 1993년 단군릉 발굴이 일어났다. 혁명의 수도 평양을 신성화하면서 역사학도 그에 봉사해야 했던 것이다. 이 일련의 움직임은 1998년 등장한 대동강문명론으로 절정에 이른다. 북한은 세계 5대문명으로 대동강문명을 꼽고 있다. 세계 4대문명이라는 게 중국의 양계초가 한마디 한 걸 일본이 받아들여서 꾸며진 것을 생각하면 대체 이게 뭐하는 짓인가 싶다. 이런 식의 주장 자체가 유사역사학적 발상에서 나오는 것이다.

대동강문명론이 나온 1998년은 북한정권 창설 50주년으로 김정일이 조선민족제일주의와 김일성민족론을 주장하면서 세습 정당화에 나섰던 때이다. 북한의 역사학 역시 정권의 시녀로 독재 옹호에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던 것이다. 북한은 대동강 유역이 인류 문화의 발상지이자 조선 사람의 발상지라고 주장하는데 이쯤 되면 이미 학문이라고 할 수 없는 상태로 전락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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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이텔·이글루스에서 사이비•유사역사학들의 주장이 왜 잘못인지 설명해온 초록불입니다. 역사학 관련 글을 모아서 <유사역사학 비판>, <우리가 오해한 한국사>와 같은 책을 낸 바 있습니다. 현재 우리나라 역사를 시민에게 쉽게 전달할 수 있는 책들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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