갭투자 비판 없이 전세사기 해결은 불가능하다

오찬호
2023/04/17
부동산 가격 상승을 '힘들게 살아온 자신 인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고 여기는 이들이 많아질수록 그 사회는 엉망이 된다 - 사진출처 픽사베이

영화 <싱크홀>은 서울 한복판에 생긴 큰 구멍 아래로 빌라가 통째로 빠져버리는 이야기다. 제목이 내용인지라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예견되어 있었지만, 영화는 굳이 빌라의 미래를 암시하는 대화를 도입부에 삽입한다. 직장 상사 동원(김성균 분)의 내 집 마련 집들이에 초대받은 승현(이광수 분)은 축하만 해야 할 자리에서도 다그친다. 그 돈으로 아파트를 사야지, 빌라를 매매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라고 말이다. 그 빌라, 결국 사달이 난다. 
   
빌라 사는 사람이라면 짜증이 나지 않을 수가 없다. 그 정도로 빌라는 동네북이다. 누가 SNS에 ‘드디어 내 집 장만’이라는 소식을 알렸다고 하자. 그게 빌라라고 상상하는 사람은 없다. 빌라 살면, 알아서 안 한다. 어디에 산다(live)는 걸 가지고 사람을 분류하고 평가하지 않는 게 상식이겠지만, 한국에선 빌라를 사는(buy) 건 상식적이지 않다고 물 흐르듯이 해석된다. 

그래서 누구는 우쭐거리고, 누구는 위축된다. 언젠가부터 빌라는 아파트에 살지 못해서, 아파트로 들어갈 돈이 없어서 ‘머무르는’ 기착지로만 취급받는다. 모두가 같은 기준을 가졌다고 착각하는 이들은, 빌라 거주자에게 이러쿵저러쿵 부동산 투자의 원칙을 설교하기 바쁘다. 그러니 빌라 사는 당사자가 머리를 긁적거리며 ‘나중에 아파트 가야죠’라고 말을 덧붙인다. 욕 안 먹는 건, 빌라 전체를 통으로 살 때 정도일 거다. 그것도 세입자 보증금 끼고 아주 저렴하게, 그래서 '갭투자로 매달 월세 수익이 얼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만. 이런 사람이 '늘수록' 보증금을 못 돌려받는 피해자도 당연히 증가한다.
      
빌라에 왜 거주하는지를 해명하는 것도 억울한데, 빌라 살다가 봉변마저 당한다. 집으로 날아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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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여러 대학에서 오랫동안 사회학을 강의했고, 사회가 개인을 어떻게 괴롭히는지를 추적하는 글을 씁니다.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2013)를 시작으로 최근작 <민낯들>(2022)까지 열세 권의 단독 저서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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