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앞으로 와퍼를 먹지 않을 것이다

김성호
김성호 인증된 계정 · 좋은 사람 되기
2024/04/20
▲ 버거킹 와퍼 판매 종료 공지 ⓒ 버거킹

끝이다.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20년을, 세상 모든 버거 가운데 제일이라 여겼던 나다. 저기 어디서 세상 유명하다는 버거가게가 한국에 들어왔다고 떠들썩할 때에도 나는 버거의 제왕은 역시 와퍼라고 우겨대었던 것이다. 못해도 보름에 하나는, 신제품이 나올 때마다 하나씩은, 해외에 나가서까지도 찾아먹었던 와퍼를, 그러나 나는 접기로 결심했다.

8일 오전 9시, 버거킹이 '40년 만에 와퍼 판매를 종료합니다'라고 공지를 띄웠다. 이게 무슨 소린가 눈을 비비고 보았으나 '40년 사랑에 감사한다'는 이야기 뿐. 나는 또 하나 벗을 떠나보내는 마음으로 어째서 보름에 두 개를 먹지 못하였는가를 질책하며, 왜 친구들에게 더 많은 와퍼를 먹여주지 못하였을까 후회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아쉬운 대로 친구들과 와퍼데이를 잡고서 그날부터 며칠 연속으로 와퍼를 먹기로 하였는데, 이 모든 게 마케팅이었다는 이야기가 여러 기사를 통해 쏟아졌던 일이다.

새단장을 앞둔 가짜뉴스 마케팅이 얼마나 효과를 발휘했는지, 또 이런 마케팅을 기획하고 승인한 이들이 얼마나 유능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나와 같은 이는, 또 학창시절부터 와퍼와 함께 희노애락을 누려왔을 적지 않은 나의 동지들은 이 브랜드가 넘어서는 안 되는 선을 넘었다고 판단했음이 분명하다.

가까운 이 가운데 몇이 삼 개월이며 육 개월이며 일 년까지도 와퍼를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였고 온라인 상에서도 이와 같은 이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내 경우엔 정도가 좀 더 심해서 아예 와퍼를 영영 먹지 않겠다고 결심하였다. 사람의 애정을 가지고 장난질을 치는 마케팅을 하는 회사의 버거라면 사나이의 최애버거가 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와퍼와의 동행에 종지부를 찍으며
▲ 파운더 스틸컷 ⓒ CGV 아트하우스

20년 동행의 종지부를 찍는 마지막 와퍼를 씹던 날, 나는 집에 들어와 영화 한 편을 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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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서평가, 작가, 전직 기자. 저널리즘 에세이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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