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연애[연대]하는 나의 이야기

이재랑
이재랑 · 살다보니 어쩌다 대변인
2021/11/19

 군대 가고 첫 외출 나오는 날, 애인이 부산에 내려오기로 하였다. 아침 9시쯤 만나서 저녁 7시까진 부대에 다시 들어가야 했기 때문에, 다정하게 인사 나눌 여유 같은 것도 없었다. 두 달간 만나지 못한 서러움을 반나절 안에 압축적으로 해치우고 나니 금방 어둑해졌다. 겨울이었다.

 한사코 말렸는데도 애인은 부대 들어가는 나를 보고 가겠다고 하였다. 택시를 타고 부대 앞에 내려, 들고 있던 커피를 애인에게 건네주고는 어색하게 손을 흔들고 부대로 들어갔다. 제대한 지 2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그 장면을 복기하는 것이 너무 아릿하다. 애인이 보고 있는 나는 암흑 속으로 돌진하고 있었고, 애인을 보고 있는 나는 빛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었다.

​ 나중에 들었는데, 애인은 그 앞에서 내가 준 커피컵을 들고(이 커피컵을 애인은 아직도 갖고 있다;;) 어쩔 줄 몰라 부들부들 떨다가 울어버렸다고 했다. 이등병과 이등병 애인은 그렇게 헤어져야 한다는 걸 몰랐기 때문이었다. 아직도 그 때 이야기를 망연함과 서러움의 총체, 정도로 상기한다. 그 이후로 제대할 때까지 애인과 나는 부대 앞까지 같이 가지 않고 미리 헤어졌다. 
 그 때의 망연함을 겪은 애인은 무엇을 했는가. '군인권센터'에 후원하기 시작했다. 응? ‘시민단체’란 사회학을 어설프게 배운 자들의 방패, 같은 것이었다. 간부가 부당한 요구를 할 때, 선임이 위험수위를 넘나들 때, 훈련에 들어갈 때 그리고 사람들이 둔감한 군대 내의 사고 소식을 들을 때마다 나 대신 애인이 군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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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정의당/청년정의당 대변인 (~2022) 10년 차 사교육 자영업자. 작가가 되고 싶었고, 읽고 쓰며 돈을 벌고 싶었고, 그리하여 결국 사교육업자가 되고 말았다. 주로 학생들의 한국어 능력과 시험성적을 꾸짖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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