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편소설: 베다니로 가는 길(3)- 어느 초라한 장례식]

안순우
안순우 · 시와 소설을 사랑합니다.
2024/04/27
<4>
해가 서산으로 떨어지고 미약한 봄볕이 자취를 감추니 청천강(淸川江)에서 불어오는 찬바람이 살을 파고들었다. 멀리 넓은 <안주-박천 평야>가 희끄무레하게 눈에 들어왔다. 지평선 같이 펼쳐진 평야 끝에 있는 동리의 집집마다 불이 켜지면서 어둠 속에서 별빛처럼 반짝였다. 신의주로 올라가는 경의선 기차가 시커먼 연기를 토해내면서 길다란 꼬리를 물고 뱀처럼 기어간다. 기적 소리가 저녁 공기를 뚫고 아련하게 들려온다. 황국성은 1938년 신사참배 결의로 목회의 길을 포기하고 조선을 떠나기 위해서 저 경의선 열차를 탔다. 기차는 조선 땅 마지막 역인 신의주를 뒤로하고 압록강 철교를 건넜다. 쇠바퀴가 철로와 마찰하면서 거대한 굉음을 울리며 기차는 중국 안동(安東) 땅에 도착했다. 태어나고 생전 처음으로 타국땅을 밟았던 그날 밤, 낯설음과 두려움으로 떨었다.  산등성에는 석양의 붉은 여운이 아직 남았다. 이윽고 하늘에는 별들이 하나씩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능선에서 산바람이 불어오니 앙상한 가지 사이를 바람이 지나가는 소리가 ‘윙윙’하고 들렸다.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리고 있던 황국성은 자정이 넘어서 은신처를 떠나서 집으로 향했다. 어둠 속에 만물은 세상의 인심과 세태를 모르는 듯이 곤히 잠들었다. 하현달은 서산까지 아직 두 뼘이나 더 남았다.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쉬운 신작로를 피하고 산기슭의 오솔길을 따라서 걸었다. 동네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마을 앞산의 능선을 타고 집 뒤의 산비탈로 내려왔다. 고향을 떠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기억을 더듬어서 밤길을 걷고 있다. 언덕 위에서 마을의 동태를 살펴보니 대문과 마당에는 상갓집을 알리는 등불이 켜져 있었다. 집 부근에 당도해서 발소리가 나지 않도록 구두에 수건을 동여매었다. 본채는 이미 인민위원회에서 접수하여 사용할 수 없다. 아마 사랑채에 부모님의 시신과 교우들이나 친척들이 머물고 있으리라! 황국성은 뒷담을 뛰어넘어 본채 뒤에서 집 안으로 들어가는 사잇문 앞에 멈춰 섰다. 몇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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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불멸성과 불가해성을 고민합니다. 가장 존귀하지만 또 가장 부패한 인간 연구에 천착하여 틈틈이 글을 쓰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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