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아에오(20)] 말이 느려요, 느려도 너무 느려요.

케이크여왕
케이크여왕 · 평범함을 꿈꾸는 엄마
2024/04/05
2년 전의 일이다. 갑자기 도어락 열리는 소리가 들려서 현관으로 급히 달려가니 느린 첫째가 신발을 신고 나가려고 하고 있다. 빨리 들어오라고 한 뒤에 어디 가려고 문을 열었냐고 계속해서 물어봤다. 15분 동안 아이 손을 잡고 답이 나올 때까지 물어봤는데 아이는 어디 가려고 했냐는 내 말만 따라 할 뿐이었다. 그렇게 나도 지쳐갈 때 즈음 아이가 드디어 대답했다. “편의점” 아, 편의점에 가려고 했구나. 알았어. 엄마랑 같이 가는 거야, 혼자 가는 거 아니야라고 답한 뒤에 반신반의한 마음으로 아이를 데리고 나갔다. 아이는 나와서 좋은지 겅중겅중하며 앞서 걷다가 편의점으로 들어가 고래 과자를 골라왔다. 아, 정말로 편의점이었구나.

말이 왜 이렇게 더딘 것인지, 언어 치료를 한지 4년 즈음 됐는데도 아이가 제대로 된 답을 하지 못한다. 나도 왔다갔다하는 핑퐁대화라는 것을 해보고 싶은데 현실은 무반응과 반향어의 향연이었다. (반향어는 사람이나 기계의 말을 듣고 그대로 따라하는 것이다. 내가 묻는 말을 바로 따라할 때도 있고 예전에 들었던 말을 시간이 지나서 갑자기 사용할 때도 있다.)
 
Image by nugroho dwi hartawan from Pixabay
그렇게 답답한 시간이 흘렀다. 아이가 도무지 말귀를 못 알아먹는 듯했다. 남편이 아이에게 ‘너 이름이 뭐야’라고 물으면 답이 없다. 그래서 “저는 ***입니다”라고 시켰더니 입니다만 따라 한다. 힌트를 주려고 “저는”이라고 말해주었더니 “***입니다”만 한참을 반복한다. 내가 하는 말을 제외하고 계속해서 반복하길래 나중엔 내가 지쳐서 더는 시키지 않았다. 아, 이럴 때는 정말 암담하다. 그래서 다 포기하고 싶다고 생각할 때가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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