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관계로 바라보는 고려 (2) 100년의 영토분쟁

서준수
서준수 · 꿈꾸는 현실주의자
2024/01/23
993년 거란이 고려를 침략하자 양국은 (서희의 담판 후) 압록강을 따라 국경선을 정하기로 합의했다. 압록강 남안은 고려의 영토로, 북안은 거란의 영토로 편입되었다. 고려는 거란과 여진을 마주하는 북쪽 변방에 흥화진, 통주, 귀주, 곽주, 용주, 철주 등 6주를 설치했다. 이후 1010년 거란은 수도 개경을 점령하고 왕을 사로잡을 목적으로 4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공했다. 고려 현종은 남쪽으로 도망치며 거란에게 화친의 제스쳐를 보내는 사이, 북방의 무장들은 거란을 배후에서 공격했다.
드라마 <고려거란전쟁>의 한 장면. 동아시아 최강 거란을 이긴 고려는 이후 국제적 위상이 근본적으로 달라졌다.
고려의 완전한 항복을 받아내지 못한 거란은 1018년 다시 10만 대군으로 고려를 침공했지만 귀주에서 대패했다. 이 시기는 한국의 역사교육에서 중국을 상대로 한 대승으로 자주 언급되어 왔다. 또한 이 고려-거란전쟁 이 압록강 이남에 새로 편입된 고려의 영토가 오늘날까지도 중국 대륙과 한반도를 구분하는 경계가 되어오고 있다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1019년 고려와 거란은 국교를 회복했다. 고려는 다시 송의 연호를 버리고 국교를 끊음과 동시에 거란의 연호를 택했다. 거란과의 전쟁 승리에도 불구하고 고려는 송과의 교류는 유지하되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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