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한 접시만 있어도 고봉밥 한 그릇 뚝딱하던 시절이 있었다. 남학생 혼자 자취하는데 무슨 반찬이 있겠는가. 엄마표 김치 한 통이면 냉장고가 충만했다. 김치가 없으면 라면은 또 무슨 맛인가. 찢어먹고 끓여먹고 볶아먹고 다 해먹었다.   김치의 옛말은 ‘딤채’로 알려져 있다. 식자들은 한자의 음과 뜻을 빌려 ‘침채(沈菜)’라고 불렀다. 이 단어는 고려 말부터 문헌 기록에 나타났다. 유학자 이색은 ‘유구가 우엉과 파와 무를 섞어 담근 침채장을 보내다’라는 제목의 한시를 남겼다. 유구라는 사람이 김치를 선물하자 시를 지어 보답한 것이다. 고려 말에는 우엉, 파, 무 등이 김치 만드는 데 쓰였다.   조선 광해군 때는 김치가 뇌물로 이용되기도 했다. 1608년 왕위에 오른 광해군은 임진왜란으로 궁궐이 불타고 물자가 부족해 생활에 불편함이 많았다. 그는 종친의 집을 거처로 삼고 신하들이 바치는 음식을 먹었는데 ‘침채정승(沈菜政丞)’이니, ‘잡채상서(雜菜尙書)’니 하는 말들이 세상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