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떠올리게 하는 당신께 -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등대로』, 민음사
오케스트라 지휘자를 떠올리게 하는 당신께 - 버지니아 울프 지음, 이미애 옮김, 『등대로』, 민음사
친애하는 램지부인께
안녕하세요 부인,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서 기뻐요. 저는 2023년 한국에 사는 40대 초반 여성 안정인이라고 합니다. 『등대로』를 읽고 가장 마음에 와닿는 등장인물을 골라 편지를 쓰라는 주문에 누구를 고를까 오래 망설였어요. 다시 찬찬히 책을 읽은 뒤 당신께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에 읽었을 때와 두 번째 읽었을 때 가장 새롭게 다가온 인물이 램지 부인이기 때문입니다.
고백하자면 처음 책을 읽었을 때 저는 부인께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했어요. 모두가 당신의 아름다움과 위엄, 헌신을 찬탄하지만 제 눈엔 당신이 그리 행복해 보이지 않았거든요. 늘 공감과 찬사를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허약한 내면을 가진 램지 씨를 떠받드는 모습이 답답했고, 그의 불같고 까다로운 성미에 당신이 일조했다고도 생각했어요. 애써 민타와 폴을 맺어주려고 하거나 애초에 결혼 생각이 없는 릴리에게 자꾸 결혼을 강요하는 듯한 모습도 고리타분하게 보였어요. 엄마...
나의 ‘간직하고픈’ 단어들의 사전 - 핍 윌리엄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엘리출판사
나의 ‘간직하고픈’ 단어들의 사전 - 핍 윌리엄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엘리출판사
여성학을 공부한다는 건 내 언어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 첫 학기에 한 교수님이 “남아선호사상이라는 단어는 아들 밝힘증으로 바꿔야 한다” 일갈하셨을 때의 해방감을 기억한다. 그렇지. 자유주의 사상, 민주주의 사상도 아니고 남아선호를 무슨 사상씩이나 붙이나. 아들 밝힘증, 병 맞네 뭐! 쨍한 얼음물을 마신 것처럼 머릿속까지 시원하고 통쾌했다. ‘태초에 목소리가 있었다’는 또 어떤가.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는 성서 구절을 살짝 비튼 이 멋진 문장은 단 하나의 진리, 경전, 로고스의 권위를 사뿐히 뛰어넘는 힘이 있다. 객관과 중립의 장막을 걷어내고 나면 여성들의 말과 글이, 삶과 투쟁이 중요한 무게감으로 다가왔다. 그 과정에서 작지만 힘찬 목소리들을 발견하는 기쁨이 컸다. 낡은 고정관념을 부수고 새로운 시선으로 사람과 사회를 바라보는 법, 나 자신의 목소리에 주목하고 귀하게 여기는 법을 여성학에서 배웠다.
반면, 엄마로 살아가는 건 내 안에 모래알처럼 빠져나가는 단어들을 목도하...
오래 품은 질문, 오래 기다린 대답 - 정혜신, <당신이 옳다>, 해냄출판사
하고 싶은 것을 묻는다면 -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 레모출판사
노란 리본 같은 책 - 홍은전의 <그냥 사람>, 봄날의책
당신을 위해 쓰겠습니다 - 메리 파이퍼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공감과 연대의 글쓰기 수업』
당신을 위해 쓰겠습니다 - 메리 파이퍼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공감과 연대의 글쓰기 수업』
얼마 전 혼자 동네에 좋아하는 국숫집을 찾았다. 점심시간이라 하나 남은 빈자리에 앉았다. 주문하고 수저를 챙기는데 옆자리 모녀의 대화가 들렸다. 일부러 엿듣지 않아도 다 들릴 만큼 크고 또렷한 소리였다.
“특목고 준비해. 엄마는 너 일반고 가는 거 싫어.”
평일 점심시간, 소박한 동네 식당에서 나올만한 대사는 아니다 싶어 놀랐다. 몰래 맞은편에 앉은 딸의 얼굴을 흘깃 보았다. 아이는 아무 말도 없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대차게 말대꾸라도 하면 좀 덜 안쓰러웠을 텐데, 아무런 대답도 없이 그저 고개를 숙인 모습에 마음이 쓰였다. 잠시 후 일어선 아이의 등에 짊어진 가방이 유독 크고 무겁게 보인 건 내 기분 탓일까. 몇 주가 지난 지금도 엄마의 단호한 목소리와 아무 말 없던 아이의 굳은 표정이 계속 생각난다.2024년 3월, 교육운동단체 글쓰기모임에서 함께 읽을 책으로 작가이자 심리 상담가인 메리 파이퍼의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을 추천했다....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킨>, 비채
어떠한 댓가를 치르더라도 - 옥타비아 버틀러 지음, 이수현 옮김, <킨>, 비채
독서 모임이 아니면 만날 수 있었을까 싶은 책, 소개해 준 사람에게 한없이 고마워지는 책이 있다. 옥타비아 버틀러의 소설 『킨』이 내겐 그렇다. 처음엔 손가락 두 마디 두께에 하드커버 표지에 뜻을 알 수 없는 제목까지 ‘난해한 벽돌 책’일 거란 선입견이 있었다. SF소설은 낯선 장르라 취향에 맞을까 갸웃하기도 했다. 그러나 일단 시작하고 보니 전혀 달랐다. 프롤로그부터 마지막 장을 덮을 때까지 이 책은 시종일관 예상치 못한 전개로 내 시공간을 삼켜버렸다. 압도적인 몰입감, 『킨』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소설의 첫 문장은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나는 집으로 돌아오는 마지막 여행에서 팔 하나를 잃었다. 왼팔이었다. (8쪽)” 다음 장을 안 넘겨볼 수 없는 강렬한 시작이다. 소설은 1970년대를 살던 미국 흑인 여성 다나가 갑자기 1800년대 초 미국 남부로 미끄러져 들어가는 상황을 보여준다. 현실에서 다나는 케빈이라는 백인 남성과 결혼했고 자유롭고 동등한...
문학의 쓸모를 묻는다면 - 신형철,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한겨레출판
작은 물방울이 모여 바다를 이루듯
한탸처럼 읽고 흐라발처럼 쓰고 싶다 - 보후밀 흐라발, 이창실 옮김,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
한탸처럼 읽고 흐라발처럼 쓰고 싶다 - 보후밀 흐라발, 이창실 옮김, 『너무 시끄러운 고독』, 문학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