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고 싶은 것을 묻는다면 - 아니 에르노, <얼어붙은 여자>, 레모출판사
2024/04/25
“너는 뭐 하고 싶은 거 없어?”
주재원 발령이 난 남편을 따라 영국에 간 첫 해, 대학동문들이 모인 저녁 식사 자리에서 한 남자 선배가 물었다. 남자들끼리 골프 치러 가고 싶은데 남편이 내 눈치를 보자 꺼낸 말이었다. 그가 좋아하는 골프를 하면 다음 주말은 내가 하고 싶은 걸 하라고. 순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멍했다. 내가 망설이자 남편이 얼른 말을 받았다. “정인이는 하고 싶은 거 없어요. 주말에 가족끼리 같이 있는 걸 좋아해.”
내가 답할 말을 남편이 가로채는 것도 불쾌했지만 그 말이 맞는다는 게 더 속이 상했다.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니었다. 임신 초기 심한 입덧으로 시도 때도 없이 구역질하면서도 꾸역꾸역 다녔던 직장은 임신 사실을 알리자 곧 계약 종료되었다. 일이 너무 하고 싶어서 돌쟁이 아기를 영아 전담 어린이집에 맡겼지만 감기에, 수족구에, 장염에 가는 날보다 못 가는 날이 많았다. 당장 열이 펄펄 나는 아이를 두고 회의에 갈 수 없는 노릇.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