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었어 하노이] 2. 시원하게 느긋하게, 짜다 한 잔

신예희
신예희 인증된 계정 · 위인입니다
2024/04/16
베트남에 온건 10여 년 만인데, 그땐 남쪽 도시 호찌민에서 밤 버스를 타고 달랏으로 올라갔다가, 다시 버스로 중부의 다낭과 호이안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새벽에 호찌민으로 돌아와 귀국. 남북으로 워낙 긴 나라라 북부 지역까진 미처 가보지 못했다. 2주일을 여행하는 내내 계속 이동하느라 잔뜩 지쳐버려서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행을 떠나기 직전에 독한 감기에 콱 걸려버렸던 게 컸다(어쩌면 정말로 독감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래도 맘 편한 여행을 위해 몇 주 치 작업 마감을 미리 해치우는 사이 그렇게 되었던 것 같다. 코로나와 팬데믹을 대차게 겪은 지금이라면 여행 일정을 조정하거나 아예 취소할 것도 같지만, 그때만 해도 감기야 뭐 별것 아니라고 생각했다. 마스크를 쓸 생각도 하지 못했고. 
 
그 결과 2주일 내내 끙끙 앓았다. 돈 쓰고 시간 썼는데, 아, 억울해라. 날은 너무 덥고, 너무 습하고, 햇볕이 죽일 듯이 이글대고 지글대다 한순간에 비가 쏟아진다. 아우, 정신없어! 그 와중에 저 멀리서 오토바이가 달려오는데, 한대가 아니라 십만 대군은 되어 보이네? 목숨걸고 길을 건너 뭘 좀 사 먹으려니 하나부터 열까지 다 흥정을 해야 하네? 아, 정말 못 해 먹겠어!
 
요만큼도 즐겁지 않았고, 귀국해서도 베트남은 별로더라는 소릴 입에 달고 다녔다. 누가 여행이라도 간다고 하면 에헤이, 딴 데 가라며 초를 치기도 했고. 그렇게 부정적인 기억만 한가득한 채로 내 안에서 굳어갔는데.
 
이제 와서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 번 더 가보고 싶어졌다. 맞아, 정작 수도 하노이는 아직이잖아. 날씨도, 음식도, 문화도 꽤 다르다던데. 그리고 사실 그때 그 여행이 별로였던 건 베트남 탓이 아니라 내 컨디션이 꽝이어서였을 거구… 라며 멀쩡한 나라 흉을 본 걸 늦게나마 반성해 봅니다. 죄송합니다.
 
여행 준비를 시작해 보니, 과연 남부와 북부가 다르긴 다른가보다. 호찌민은 12월에서 3월 말 사이가 여행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는데, 하노이는 그보다 이른 10월과 11월을 최고로 꼽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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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년 차 프리랜서. 글, 그림, 영상, 여행, 전시 작업에 관여합니다. <돈지랄의 기쁨과 슬픔>, <지속가능한 반백수 생활을 위하여>, <어쩌다 운전> 등의 책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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