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렉세이의 고고인류학 53편 - 아르헨티나 대선, 부패 악순환 끊어낼 수 있을까?,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큰 선거
2024/04/28
작년에 끝난 아르헨티나 대선은 국제적인 부분보다 국내적인 악의 고리를 끊을 수 있을까가 관건이었다. 아르헨티나의 국토는 한국의 28배에 달한다. 국토가 남북으로 길게 뻗어 있어 다양한 기후대에 놓여있기도 하다. 그렇기에 여러 가지 농작물을 생산하는 농업부국이기도 했다. 인구도 4,500만 명으로 적지 않지만 현 아르헨티나의 국토로 보자면 이 또한 인구가 부족한 셈이다. 그러나 자원이 풍부한 지형적 조건은 무시할 수 없었고 이를 바탕으로 아르헨티나는 20세기 초엔 경제 규모 세계 5위의 부국으르 떠올랐다. 그러나 1900년대 중반 포퓰리즘 정권이 들어서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아르헨티나는 자원 수출로 벌어들인 돈을 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투자로 돌리기보다 상당수를 이민자들에 대한 복지 예산으로 지출했다. 그 때문에 경제 구조가 취약해졌고, 대외 부채는 쌓여가기 시작한다. 한때 세계 각지에서 이민자가 몰려오는 나라였지만, 경제가 파탄났고 IMF에 구제 금융으로 인한 변재도 제대로 못하는 상황까지 떠 안으면서 여러 차례 국가부도 사태를 맞이했다.
이미 만연해진 부정부패와 극심한 빈부격차가 아르헨티나 경제가 처한 현실이다. 최근 아르헨티나는 연간 물가 상승률이 100%를 넘는다. 1년 만에 물가가 두 배 넘게 뛰는 것이다. 이처럼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경제적으로 낙후하고 국민 삶의 질이 낮아지는 현상을 ‘자원의 저주(Curse of Resources)’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었어도 산업 경쟁력을 높이지 않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으면 몰락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적인 패턴으로 인해 페론주의 정당이라 불리는 정의당(Partido Justicialista)의 현직 알베르토 페르난데스(Alberto Fernandez) 대통령은 정치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고 국내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규탄이 이어졌다. 이 때 떠오른 인물이 바로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이다.
이처럼 선거 직전에 GOP (Grupo Opinión Pública) 및 Trespuntozero의 여론 조사 실시되었다. 이 때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전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주의 제안당(Propuesta Republicana)의 지지율이 36%에서 36.6%로0.6% 상승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헤라르도 모랄레스(Gerardo Morales)가 이끄는 급진시민연합(Unión Cívica Radical)과 연정을 탄 야권 연합이라 시민들의 지지율 상당히 높았고 지속적으로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페론주의 정의당에 비해서도 약 0.6%p 정도 높은 수치를 나타내며 정권이 교체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선거 전의 다른 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페론주의 정의당의 지지율이 높은 것도 나타나고 있어 선거 시작 불과 2시간 전만 해도 섣부른 예단은 어려운 전망이었다. 세부적인 후보 지지율로 놓고 볼 때 공화주의 제안당과 페론주의 정의당 모두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편이며 평균적으로 공화주의 제안당에서 오라시오 라레타(Horacio Larreta) 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과 파트리시아 불리치(Patricia Bullrich) 전 안보부 장관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편이다.
한편 페론주의 정의당에서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의 재선보다는 전직 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Cristina Fernández de Kirchner) 현 부통령의 재등판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은 편에 있다. 이 외에도 자유 지상주의(Libertarianismo)를 주창하는 경제학자 출신의 연방 하원의원 하비에르 밀레이가 제3 후보로 부상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4월 21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부통령의 출마 선언이 임박해 보였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2022년 12월의 법원에서의 판결로 인해 공직 선거 출마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결국 크리스티나는 2023년 5월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된다. 6월 24일에는 페론주의 정의당을 중심으로 하는 집권 페론주의 여당 연합인 '조국을 위한 연합(UP)'에서 경선을 치르지 않고 세르히오 마사(Sergio Massa) 경제부 장관을 대선후보로 추대하였다.
마사 전 장관은 한 때 페론주의 정의당 소속으로 당내 우파를 대표하였으나, 이후 탈당하여 '회복 전선(Renewal Front)'이라는 이름의 신당을 창당하고 UP에 합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마사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지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고 국민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그 지지도와 인지도를 상쇄시켜줄 런닝메이트(Running Mate)가 필요한 법이다. 페론주의 정의당은 부통령 후보로 아구스틴 로시(Agustín Rossi) 수석장관을 마사에게 붙여주었다. 마사 장관을 후보로 내세우면서 페론주의 정의당은 1963년 이래 70년 만에 자당 후보를 내지 않게 되었다. 물론 UP가 페론주의 정의당 주도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상 페론주의 정의당이의 독무대라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지만 워낙 페론주의 정의당의 인기가 급락하여 명맥 유지에 급급하였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8월 13일에는 각 정당 연합의 대선후보를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개방형 국민 경선(PASO)이 열린다.
아르헨티나의 선거제도는 특이하게 각 당이나 정당 연합에서 개별적으로 내부 경선을 실시하여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예비후보의 정식 후보 공천 여부가 각 정당 연합에서 지정된 날짜에 열린다. 이 날 아르헨티나는 각 정당 연합의 후보 공천을 국민들에게 공표하는데 이 때 경선 투표로 결정되는 PASO 시스템을 선택하고 있다. PASO는 정당연합별로 모든 출마자를 한 국민 투표에 부쳐 최종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 방식이다. 한 정당연합 소속 예비후보 여러 명 중에서 예비선거 1위를 한 후보가 그 연합의 최종 후보로 확정되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PASO에 참여해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은 수많은 예비후보들 중 단 한 명에게만 투표하며, 이는 의무투표제다. 이 때문에 각 정당별 1위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순위까지 한 번에 드러나게 되는데, 심지어 의무 투표제이기 때문에 투표율도 높아 대선의 본선에서 누가 당선될 지를 점지하는데 매우 유용한 결과를 제공하고 있는 정치시스템이다.
정당연합 '자유전진(La Libertad Avanza)'의 하비에르 밀레이 예비후보가 약 30%를 득표하며 전체 1위를 차지하면서 충격적인 파란을 일으킨다. 이는 전통적인 기성 양당인 페론주의 연합과 비(非) 페론주의 연합을 모두 제치고 완전히 새로운 제3 세력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게다가 밀레이 후보는 '자유전진(La Libertad Avanza)' 연합에서 단독 후보로 출마하였기 때문에 30%의 득표가 온전히 자신 1인의 득표였고, 기성 양당은 각각 2명씩 예비후보를 내세운 것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패배의 충격이 더 컸다. 밀레이 후보는 자유지상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극우파 정치인으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을 폐쇄하고 미국 달러화를 공용화폐로 통용하며 장기 매매 및 무기 소지 합법화를 허용하는 등 급진적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예비선거 이후로도 지지율이 세 후보간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지만 하비에르 밀레이가 예비선거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지지율이 3위에서 1위로 올라섰고 1차 선거 이전까지 1위 자리를 수성하게 된다.
10월 22일에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1차 선거에서 예비선거에 이어 또 다시 여론조사가 뒤바뀌게 된다. 1위를 기록하던 밀레이 후보 대신 페론주의 정의당을 비롯한 정당연합은 '조국을 위한 연합 (UP)' 소속의 좌파 후보 세르히오 마사가 갑자기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 동안의 여론 조사 흐름과 전혀 다른 결과라 국내외 언론들도 이 당시 매우 놀란 상태였다. 이로써 최종 결과는 3위를 차지하며 탈락한 파트리시아 불리치 후보 지지층 표심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 여기에 달린 형국이 되었다. 불리치 후보를 지지했던 공화주의 제안당 중심의 중도우파 야권연합 '변화를 위해 함께(Juntos por el Cambio)'의 지지자들이 누구에게 투표하느냐가 결선 투표 승자를 가리게 될 것은 분명했다. 1차 투표가 막 종료된 시점에 있어서 범우파인 하비에르 밀레이 측이 더 유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실제로 불리치 후보는 낙선이 확정된 이후, 밀레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페론주의 좌파 연합과 마사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10월 25일에는 불리치 전 후보가 현 정권 심판론을 대의로 내세우며 밀레이 후보 지지를 전격 선언했다. 전날인 24일 밀레이 후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하루 만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공화주의 제안당 창립자이자 '변화를 위해 함께' 연합을 이끄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 역시 밀레이를 지지하는 측으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또한 양자 대화를 통해 밀레이가 자신에게도 구태의연한 기성 정치인이라며 비판한 것에 대해 사과했으며 마크리 전 대통령은 밀레이를 용서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투표 여론조사를 보면 일단 대체적으로 8~10% 차이로 마사 후보가 우세를 보였으나 무응답이나 고민 중이라는 응답이 10~17%로 숨어 있는 부동 여론이 크게 변수가 되었다. 이번에도 여론조사가 틀린다면 여론조사 업체들은 대선 예측을 전부 틀리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다만 아틀라스 인텔(Atlas Intel)이라는 여론조사 업체는 1차 투표에서 밀레이가 아닌 마사가 이긴다고 유일하게 예측했고 이를 맞추면서 다행이었던 반면 같은 업체가 결선에서는 오차범위 내에서 밀레이가 이긴다고 예측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신뢰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어 11월 19일,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가 벌어졌고 오후 9시 이전, 페론주의 정의당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는 비공식적인 결과를 보고 받은 이후 자유전진당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의 승리에 승복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이어 약 8시 20분부터 선관위가 득표율을 알려주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각종 여론 조사들하고 다르게 예상 밖의 격차로 밀레이가 앞서 나갔다. 선관위 첫번째 공식적인 발표는 개표율 86.6% 시점이었으며 마사 후보가 44.04%, 밀레이 후보가 55.95%로 밀레이가 큰 격차로 앞서면서 거의 당선이 확실시 됐다. 개표율 95.84% 시점에서는 밀레이가 55.78% 마사가 44.21%를 득표하면서 당선이 확정되었다. 이후 득표율 차이가 미세하게 줄어들긴 했지만 결국 밀레이가 55.69%의 득표율로 투표가 종결되면서 아르헨티나 제5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기성 정당이 아닌 제3 세력으로 밀레이가 당선된 것은 아르헨티나 시민사회와 정계에 있어 많은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기성 정당 정치인들 및 정당의 무능, 그리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경제 문제, 심각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그로 인한 불안정한 사회, 정경유착과 정치인들 부정부패의 악순환 등등, 꼬리를 물듯 연결되는 "악의 고리"는 대를 계속되고 있으니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에 엄청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기성 정당들과 정치인들의 계속되는 실정은 국민들을 오히려 정치에 대해 관심이 멀어지게 만드는 결과가 되었고 이전까지 세 번의 총선과 대선에서 투표율은 2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낮았다. 누가되든, 그다지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조된 제3 세력인 밀레이에게 표를 몰아준 것은 그가 경제학자라는 전문성 있는 인물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기성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반발과 실망이 극심했기 때문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민주당이든, 국민의 힘이든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실망만이 남게 된다면 이번 대선의 아르헨티나처럼 한국에도 또 다른 제3의 인물에 열광하게 될 것이다. 아마 지금도 밀레이 같은 제3의 인물이 나오길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성 정당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국민들에게 신선한 정책을 제시하며 등장할 제3의 인물이 누구일까? 그런데 그런 정치인이 대한민국에 아직까지도 전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이미 만연해진 부정부패와 극심한 빈부격차가 아르헨티나 경제가 처한 현실이다. 최근 아르헨티나는 연간 물가 상승률이 100%를 넘는다. 1년 만에 물가가 두 배 넘게 뛰는 것이다. 이처럼 천연자원이 풍부한 나라가 오히려 경제적으로 낙후하고 국민 삶의 질이 낮아지는 현상을 ‘자원의 저주(Curse of Resources)’라고 부르기도 한다. 아무리 좋은 자연조건을 갖추었어도 산업 경쟁력을 높이지 않고 미래를 위해 투자하지 않으면 몰락하고 만다. 그러나 이러한 반복적인 패턴으로 인해 페론주의 정당이라 불리는 정의당(Partido Justicialista)의 현직 알베르토 페르난데스(Alberto Fernandez) 대통령은 정치적인 위기를 맞게 되었고 국내 문제 해결의 의지가 없는 현 정권에 대한 국민들의 규탄이 이어졌다. 이 때 떠오른 인물이 바로 하비에르 밀레이(Javier Milei)이다.
이처럼 선거 직전에 GOP (Grupo Opinión Pública) 및 Trespuntozero의 여론 조사 실시되었다. 이 때 마우리시오 마크리(Mauricio Macri) 전 대통령이 이끄는 공화주의 제안당(Propuesta Republicana)의 지지율이 36%에서 36.6%로0.6% 상승된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는 헤라르도 모랄레스(Gerardo Morales)가 이끄는 급진시민연합(Unión Cívica Radical)과 연정을 탄 야권 연합이라 시민들의 지지율 상당히 높았고 지속적으로 인기가 하락하고 있는 페론주의 정의당에 비해서도 약 0.6%p 정도 높은 수치를 나타내며 정권이 교체될 것이라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하지만 선거 전의 다른 여론조사 기관에 따르면 페론주의 정의당의 지지율이 높은 것도 나타나고 있어 선거 시작 불과 2시간 전만 해도 섣부른 예단은 어려운 전망이었다. 세부적인 후보 지지율로 놓고 볼 때 공화주의 제안당과 페론주의 정의당 모두 팽팽하게 대치하고 있는 편이며 평균적으로 공화주의 제안당에서 오라시오 라레타(Horacio Larreta) 현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장과 파트리시아 불리치(Patricia Bullrich) 전 안보부 장관의 지지율이 가장 높은 편이다.
한편 페론주의 정의당에서는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의 재선보다는 전직 대통령인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Cristina Fernández de Kirchner) 현 부통령의 재등판을 지지하는 여론이 높은 편에 있다. 이 외에도 자유 지상주의(Libertarianismo)를 주창하는 경제학자 출신의 연방 하원의원 하비에르 밀레이가 제3 후보로 부상하고 있었던 상황이었다. 4월 21일, 알베르토 페르난데스 현 대통령이 재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데 키르치네르 부통령의 출마 선언이 임박해 보였었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2022년 12월의 법원에서의 판결로 인해 공직 선거 출마가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 있었다. 결국 크리스티나는 2023년 5월 대선 불출마 선언을 하게 된다. 6월 24일에는 페론주의 정의당을 중심으로 하는 집권 페론주의 여당 연합인 '조국을 위한 연합(UP)'에서 경선을 치르지 않고 세르히오 마사(Sergio Massa) 경제부 장관을 대선후보로 추대하였다.
마사 전 장관은 한 때 페론주의 정의당 소속으로 당내 우파를 대표하였으나, 이후 탈당하여 '회복 전선(Renewal Front)'이라는 이름의 신당을 창당하고 UP에 합류한 인물이었다. 그러나 마사에 대한 아르헨티나 국민들의 지지도가 그리 높지 않았고 국민들에게 그다지 많이 알려지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에 그 지지도와 인지도를 상쇄시켜줄 런닝메이트(Running Mate)가 필요한 법이다. 페론주의 정의당은 부통령 후보로 아구스틴 로시(Agustín Rossi) 수석장관을 마사에게 붙여주었다. 마사 장관을 후보로 내세우면서 페론주의 정의당은 1963년 이래 70년 만에 자당 후보를 내지 않게 되었다. 물론 UP가 페론주의 정의당 주도로 돌아가기 때문에 사실상 페론주의 정의당이의 독무대라 해도 크게 무리는 아니지만 워낙 페론주의 정의당의 인기가 급락하여 명맥 유지에 급급하였기에 벌어진 현상이다. 8월 13일에는 각 정당 연합의 대선후보를 공식적으로 결정하는 개방형 국민 경선(PASO)이 열린다.
아르헨티나의 선거제도는 특이하게 각 당이나 정당 연합에서 개별적으로 내부 경선을 실시하여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아니다. 모든 예비후보의 정식 후보 공천 여부가 각 정당 연합에서 지정된 날짜에 열린다. 이 날 아르헨티나는 각 정당 연합의 후보 공천을 국민들에게 공표하는데 이 때 경선 투표로 결정되는 PASO 시스템을 선택하고 있다. PASO는 정당연합별로 모든 출마자를 한 국민 투표에 부쳐 최종 후보를 결정하는 경선 방식이다. 한 정당연합 소속 예비후보 여러 명 중에서 예비선거 1위를 한 후보가 그 연합의 최종 후보로 확정되는 형식을 갖고 있다. 이러한 PASO에 참여해 한 표를 행사하는 유권자들은 수많은 예비후보들 중 단 한 명에게만 투표하며, 이는 의무투표제다. 이 때문에 각 정당별 1위는 물론이고 전체적인 순위까지 한 번에 드러나게 되는데, 심지어 의무 투표제이기 때문에 투표율도 높아 대선의 본선에서 누가 당선될 지를 점지하는데 매우 유용한 결과를 제공하고 있는 정치시스템이다.
정당연합 '자유전진(La Libertad Avanza)'의 하비에르 밀레이 예비후보가 약 30%를 득표하며 전체 1위를 차지하면서 충격적인 파란을 일으킨다. 이는 전통적인 기성 양당인 페론주의 연합과 비(非) 페론주의 연합을 모두 제치고 완전히 새로운 제3 세력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게다가 밀레이 후보는 '자유전진(La Libertad Avanza)' 연합에서 단독 후보로 출마하였기 때문에 30%의 득표가 온전히 자신 1인의 득표였고, 기성 양당은 각각 2명씩 예비후보를 내세운 것이었기 때문에 이와 같은 패배의 충격이 더 컸다. 밀레이 후보는 자유지상주의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극우파 정치인으로, 아르헨티나 중앙은행을 폐쇄하고 미국 달러화를 공용화폐로 통용하며 장기 매매 및 무기 소지 합법화를 허용하는 등 급진적 공약을 내세우고 있다. 예비선거 이후로도 지지율이 세 후보간의 차이가 크게 나지 않았지만 하비에르 밀레이가 예비선거에서 1위를 기록하면서 지지율이 3위에서 1위로 올라섰고 1차 선거 이전까지 1위 자리를 수성하게 된다.
10월 22일에 치러진 아르헨티나 대통령 1차 선거에서 예비선거에 이어 또 다시 여론조사가 뒤바뀌게 된다. 1위를 기록하던 밀레이 후보 대신 페론주의 정의당을 비롯한 정당연합은 '조국을 위한 연합 (UP)' 소속의 좌파 후보 세르히오 마사가 갑자기 1위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는 그 동안의 여론 조사 흐름과 전혀 다른 결과라 국내외 언론들도 이 당시 매우 놀란 상태였다. 이로써 최종 결과는 3위를 차지하며 탈락한 파트리시아 불리치 후보 지지층 표심이 어디로 향할 것인가 여기에 달린 형국이 되었다. 불리치 후보를 지지했던 공화주의 제안당 중심의 중도우파 야권연합 '변화를 위해 함께(Juntos por el Cambio)'의 지지자들이 누구에게 투표하느냐가 결선 투표 승자를 가리게 될 것은 분명했다. 1차 투표가 막 종료된 시점에 있어서 범우파인 하비에르 밀레이 측이 더 유리할 것으로 예측되었다. 실제로 불리치 후보는 낙선이 확정된 이후, 밀레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지는 않았지만 페론주의 좌파 연합과 마사 후보를 지지하지는 않겠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10월 25일에는 불리치 전 후보가 현 정권 심판론을 대의로 내세우며 밀레이 후보 지지를 전격 선언했다. 전날인 24일 밀레이 후보와 만나 이야기를 나눈 뒤 하루 만에 내린 결정이기 때문에 공화주의 제안당 창립자이자 '변화를 위해 함께' 연합을 이끄는 마우리시오 마크리 전 대통령 역시 밀레이를 지지하는 측으로 결심을 굳혔다고 한다. 또한 양자 대화를 통해 밀레이가 자신에게도 구태의연한 기성 정치인이라며 비판한 것에 대해 사과했으며 마크리 전 대통령은 밀레이를 용서했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차 투표 여론조사를 보면 일단 대체적으로 8~10% 차이로 마사 후보가 우세를 보였으나 무응답이나 고민 중이라는 응답이 10~17%로 숨어 있는 부동 여론이 크게 변수가 되었다. 이번에도 여론조사가 틀린다면 여론조사 업체들은 대선 예측을 전부 틀리는 불명예를 얻게 된다.
다만 아틀라스 인텔(Atlas Intel)이라는 여론조사 업체는 1차 투표에서 밀레이가 아닌 마사가 이긴다고 유일하게 예측했고 이를 맞추면서 다행이었던 반면 같은 업체가 결선에서는 오차범위 내에서 밀레이가 이긴다고 예측했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신뢰성이 크게 떨어졌다. 이어 11월 19일, 아르헨티나 대통령 선거 결선 투표가 벌어졌고 오후 9시 이전, 페론주의 정의당의 세르히오 마사 후보는 비공식적인 결과를 보고 받은 이후 자유전진당 하비에르 밀레이 후보의 승리에 승복하는 연설을 하게 된다. 이어 약 8시 20분부터 선관위가 득표율을 알려주기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각종 여론 조사들하고 다르게 예상 밖의 격차로 밀레이가 앞서 나갔다. 선관위 첫번째 공식적인 발표는 개표율 86.6% 시점이었으며 마사 후보가 44.04%, 밀레이 후보가 55.95%로 밀레이가 큰 격차로 앞서면서 거의 당선이 확실시 됐다. 개표율 95.84% 시점에서는 밀레이가 55.78% 마사가 44.21%를 득표하면서 당선이 확정되었다. 이후 득표율 차이가 미세하게 줄어들긴 했지만 결국 밀레이가 55.69%의 득표율로 투표가 종결되면서 아르헨티나 제55대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기성 정당이 아닌 제3 세력으로 밀레이가 당선된 것은 아르헨티나 시민사회와 정계에 있어 많은 파장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가장 대표적으로 기성 정당 정치인들 및 정당의 무능, 그리고 해결하지 못하고 있던 경제 문제, 심각한 인플레이션, 그리고 그로 인한 불안정한 사회, 정경유착과 정치인들 부정부패의 악순환 등등, 꼬리를 물듯 연결되는 "악의 고리"는 대를 계속되고 있으니 대부분의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이에 엄청난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기성 정당들과 정치인들의 계속되는 실정은 국민들을 오히려 정치에 대해 관심이 멀어지게 만드는 결과가 되었고 이전까지 세 번의 총선과 대선에서 투표율은 20년 전과 비교해 볼 때 턱없이 낮았다. 누가되든, 그다지 희망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급조된 제3 세력인 밀레이에게 표를 몰아준 것은 그가 경제학자라는 전문성 있는 인물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만큼 기성 정당과 정치인에 대한 반발과 실망이 극심했기 때문이라는 반증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는 우리 대한민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민주당이든, 국민의 힘이든 기성 정당과 정치인들이 국민의 신뢰를 저버리고 실망만이 남게 된다면 이번 대선의 아르헨티나처럼 한국에도 또 다른 제3의 인물에 열광하게 될 것이다. 아마 지금도 밀레이 같은 제3의 인물이 나오길 고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기성 정당들에게 경종을 울리고 국민들에게 신선한 정책을 제시하며 등장할 제3의 인물이 누구일까? 그런데 그런 정치인이 대한민국에 아직까지도 전혀 보이지 않으니 답답할 따름이다.
유라시아의 역사학자 고고학자, 인류학자. 역사, 고고, 인류학적으로 다양하게 조사, 연구하기 위해서 역사, 문화적 체험을 중시하고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