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소영 인증된 계정 ·
2024/04/18

@조율 글 너무 잘 읽었습니다. 언급하신 책도 사보려 합니다. 한국인의 행복의 기준에 정신적인 것이 없다는 지적은 여러 국내외 학자들이 하는 이야기입니다. 근대화 이후 전쟁, 압축성장 등등을 그 원인으로 언급하는 분들을 보았는데 저는 더 뿌리가 깊다고 생각합니다. 제 책에도 잠시 언급했지만, 조선은 양반과 서민의 문화가 철저히 분리돼있었고 정신문화는 한 줌 양반만 향유한 데다가 양반 또한 '평생도'에서 보듯이 그 성공과 행복의 기준이 매우 획일적이고 유학 공부 또한 오로지 입신양명의 실용적 수단이었습니다. 진심으로 철학적 열정과 세상에 대한 호기심으로 공부에 매진한 이들은 소수였습니다. 그나마 그런 이들은 사문난적으로 몰려 핍박을 받곤 했고요. 이 뿌리깊은 (부정적인 측면의) 실용주의와 물신주의를 해결하려면 어찌해야 할까요? 저도 계속 관심을 가지는 부분입니다. 말씀하신 것이 많은 영감을 줍니다. 감사합니다. 

문소영 인증된 계정 ·
2024/04/18

@노영식 일단 고전인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기술복제시대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추천합니다

조율 ·
2024/04/17

안녕하세요, 오래 전부터 블로그 이웃이었는데 얼룩소에서 뵙게 되어 더 반갑습니다.

저도 다국어도서관 하고 언어교육 하면서 비교언어학, 비교문학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교수로 있다가 독일로 돌아간 독일인 친구(아버지가 한국인, 어머니가 독일인)인 친구는 한국이 지나치게 "물질적 가치"에 집중한다고, 한국 고등학생들은 너무 "경쟁"만 한다고, 그러면서도 대학 와서는 자기 생각을 제대로  말하고 쓰지도 못한다고 개탄합니다.

교육에(사교육에) 그렇게 많은 돈과 시간을 쓰면서도 왜 우리 아이들은 왜 아웃풋이 이렇게 처참할까요?

고등학교 학생들에게 내가 생각하는 행복, 에 대해 글쓰기를 시켰더니 역세권의 30평 이상의 자가 아파트, 연봉 5천 이상 이라고... 음악 전공하는 기독교 대안학교였는데 전교생 대부분이 그런 톤으로 행복을 정의해서 경악했던 적이 있습니다.

행복의 정의가 너무도 숫자여서, 물질적이어서 사실 그 독일인 친구의 개탄에 반박할 수가 없었어요.

-모난 돌이 정 맞는다
-가만히 있으면 반이라도 가지

저는 우리나라에서 토론과 건강한 논쟁이 거의 불가능한 근원적인 이유를 저 두 관용구가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모나면(남들과 다르면) 정 맞는(핍박을 당하는)것이 진리인 나라니까 남들과 다르지 않게(다 가는 학교 가고, 졸업하면 대기업 공기업 취직 혹은 돈많이 버는 자영업(=의사, 변호사) 하고,  적절한 때에 결혼하고, 남편은 억대 연봉자(적어도 6,7천은 되어야 번다고 할 수 있고) 집은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여야 합니다. 초품아면 더 좋구요. 임대 아파트, 나홀로 아파트, 빌라는 제대로 된 집이 아닙니다. 차도 몇cc 이상이어야 차라고 할 수 있죠. 중고 모닝 이런 건 차라고 하지 않지요. 
이런 너무도 구체적인 남들처럼~ 보통의~ 기준이 미달한 사람들은 가만히 입을 다물어야 하죠. 말하지 않으면 평균은 된다고 생각하니까요.

한국 사람들은 모나지 않게(튀지 않게) 보통의, 남들 하는 정도에 최대한 근접하기 위해 일생을 혼신의 힘을 다해 매진하는 것 같습니다. 그  평균의 함정에 빠져, 그 기준에 미달하면, 남들 다 하는(실제로 그 '남들'의 기준은 경제적, 사회적 지위가 상위 10% 정도) 그것도 못한다고 자신을 힐책하고, 자식을 들볶고, 그걸 하게끔 못 도와준 부모를, 사회를 원망합니다. 그래서 흙수저로 헬조선에서 사는 한국인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이.생.망입니다.

중국에도, 이탈리아에도, 호주에서도 기간은 다르지만 일정 시간 살아봤습니다. 그리고 한국에 살다가 돌아간 외국 친구들과 이야기합니다. 그들은 다시 오고 싶은 헤븐조선이 왜 지금 여기 살고 있는 우리에겐 헬조선일까요? 

모난 돌이 정 맞기 때문에 그런 거 아닐까요?
남들과 다르게 사는 건 위험한 짓이니까요. 다르면 정을 맞아도, 가만히 있어야 하니까요. 그래야 반, 이라도 가니까요. 그 반, 그 닿지 못할 남들처럼, 그 평균에 이르기 위해... 남들의 내면은 비교할 수 없고 알 방법도 없으니 가시적인 학벌, 직업, 연봉, 집 평수, 자동차배기량 등 남들이 바로 알아챌 수 있는 숫자와 타이틀을 쟁취하기 위해 우리는 오늘도 달립니다. 내가 그만큼 달리지 못하니 앞서 달리는 사람은 어떻게 저렇게 달리나, 자신을 보는 대신 남의 뒤통수를 그렇게 열심히 봅니다. 그러다 그 사람의 잘못이 보이면 사회의 공정을 실현하기 위해 그 사람을 아예 인간말종으로 취급하며 두번 다시 앞서지 못하게 아예 생매장을 시켜버립니다. 그리고 공공의 정의를 이야기하고 웃음 짓습니다. 남의 잘못에 관대하지 못한 사람들이 서로 갑질과 을질을  하며 서로 끌어내리며 불행의 구렁텅이로, 내가 행복하지 못하면 너도 같이 불행하자,를 아주 철저하게 구현합니다.

이러한 우리 사회의 면면을 통찰력 있게 보여준 것이 이규석 작가의 <지금은 없는 이야기>. 토론도서로 여러번 썼는데 매번 다들 너무 불편해하시더라구요. 너무 우리의 현실을 핍진하게, 우리의 민낯을 적나라하게 보여줘서 그런 거 아닐까 싶더라구요.

시험 기간 고1, 고2 아이들 영어 가르치고 와서 이렇게 시험 공부하는 시간에, 우리 아이들은 교과서 지문을 모고 지문을 보며 이 순간 자체가, 지문을 읽는 순간이 즐겁고 행복할 순 없을까, 나는 너무 즐거운데(돈을 많이 받아서 즐거운 게 아니라 가르치는 그 순간이 즐겁고 행복해요.) 우리 애들도 이 순간을 즐기고 만끽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습니다.

각자 다른 기준으로 살아도, 제각기 행복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 어른 세대들도, 어린 학생 세대들도요. 문제 없는 사회, 나라는 없으니 문제가 있으면 누구 책임인지를 철저히 규명해서 그 한 명, 그 집단을 처단하고 나서 문제가 해결된 양 착각하고 맘편히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누가, 왜, 어떻게 잘못했냐를 밝히는데 온갖 에너지를 쏟는 대신 이미 일어난 문제는 우리가 같이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나는 뭘 할까, 너는 뭘 할래, 나는 이거 할게, 너는 이거 할게, 이런 "공존과 협력의 언어"가 오고 가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지금 여기를 사는 우리가, 문제도 있고 결함도 있는 상태로도 지금 당장도 행복할 수 있을 텐데요.

우리 사회를  문화적으로 분석하신 작가님께서는 지금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큰 문제가 무엇이며, 그에 대해 어떤 해결책을 제시하실까 궁금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q
·
2024/04/17

요즘 분석하고 싶은 대중문화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문소영 인증된 계정 ·
2024/04/16

@서지은 감사합니다 ^^

p
·
2024/04/16

혼종!

저도 많이 생각한 이야기라 반갑게 글을 읽었어요.

1) 작가님이 가장 좋아하는 국내 작가는 누구인가요? 글쓰는 스타일에 한해서요. 

2) 글쓰기를 잘하기 위해 어떤 훈련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시는 지 궁금해요

문소영 인증된 계정 ·
2024/04/15

@노영식 반갑습니다. 벤야민의 글 중에서 가장 무릎을 친 것은 제 책에 인용한 벤야민의 '종교로서의 자본주의'에서 "자본주의가 '슐트(부채, 부채의식, 죄의식, 탓)'를 퍼뜨린다"는 것입니다. 중의적으로 쓴 표현인데, 현대의 상황과 잘 맞아떨어지더군요. 저는 시장경제를 지지하지만 물신주의적 자본주의는 심각하다고 막연하게 느끼고 있었는데 벤야민의 글을 읽고 정리가 됐습니다. 그 외에도 예술학 공부를 하면서 벤야민 글을 많이 접하는데 '기계복제시대의 예술작품'에서 "정치의 심미화"를 논한 부분이 울림이 큽니다. 이 또한 21세기에 더욱 심화되었죠.